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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4.26 :: 도리언그레이의 초상 2
  3. 2012.04.23 :: 8월 가정의학과 의국
  4. 2012.04.12 :: 백의 그림자
  5. 2012.04.05 :: 의사 이야기 2
  6. 2011.12.30 :: 7월 순환기 내과
  7. 2011.12.30 :: 5월, 6월 소아청소년과
  8. 2011.11.22 :: 4월 하부대장 외과
  9. 2011.11.22 :: 3월 내분비 대사 내과
  10. 2011.03.07 :: day 6
독서 2012. 4. 26. 12:02

 

 

 

우에노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결혼해서 애를 낳아온 여자들도 자각하는 계기는 없었잖아요. 지금 독신으로 살고 있는 여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선택의 폭이 넓어진 현실 속에서, 눈앞의 이익을 좇다보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면, 그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자각도 없이 기혼자가 되고, 자각도 없이 독신자가 되어, 한쪽에서는 애를 낳고, 한쪽에서는 낳지 않는다. 그리고 낳지 않은 쪽이 점점 더 즐어나고 있을 뿐이다." 거시적인 사회변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시대의 무의식이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요?

 

우에노 :그러고 보니, 비혼화와 결혼 갈망이라는 현상이 서로 무관하게 "비혼이 늘고 있는데도 결혼 갈망은 여전히 높다"는 기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많은 연구자들은, 결혼은 원하지만 결혼의 기대 수준이 낮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비혼화도 동시에 진전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어요.

 

노부타 :.... "아, 역시 나는 심판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두번 다시 상담받으러 오지 않습니다. 상담자는 '사법적 개입'이나 '원조'의 색깔을 띠면 안됩니다. 내담자는 심판받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정당한가를 승인받으려고 오니까요. 그래서 처음 단계에서는 승인해주지 않으면 안 돼요.

 

우에노 : 상상력도 능력의 일종이니까요.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보는 능력, 없는 것을 듣는 능력도 있을지 모르고요. 이야기가 조금 건너뛰게 됩니다만, 예를 들어 벤처를 하는 사람들은, '아직 보지 않은 미래'를 보면서, 발판이 없는 곳에 발을 내디는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드시 확실한 전망이나 확실한 대안이 제시되고 난 뒤에, A나 B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보지 않은 미래'를 보는 것은 하나의 능력이며, 거기에 발은 내딛는 것도 능력입니다. 발판이 없는 곳에 발은 내디딜 때에는, 정보를 갖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나 자존감, 그런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우에노 : 저는 '역할모델'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만, 여성들의 다양한 역할 모델이 등장할 때, 예를 들어 일을 계속하면서 애를 낳아 키우온 여성은 다른 여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런말 저런 말을 들어왔는지 몰라요. 이것이 아니라면 그것, 그것이 아니라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글쎄, 그 여자는 집이 잘 살기 때문에", "그 여자는 남편이 이해심이 많기 때문에", "그 여자는 무엇보다도 할벌이 좋기 때문에," "그 여자는 직장 상사가 이해심이 많이 깨문에"라고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갖가지 자원을 들먹이죠. 그러고 나서 "우리 집은..."이라는 식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 집 아이는 특별하게 손이 많이 가는 키우기 힘들 애라서"라든가요. 하여튼 온갖 핑계를 동원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온 여성과 자기를 차별화하려고 한거죠.

....략.... 그게 바로 핑계 입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자기를 정당화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거죠.

노부타 : 현상을 바꾸지 않고, 그 속에 안주해 있는 것에 대해, 어떤 추궁을 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략...저는 특별히 추궁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이 남편과 헤어지고 싶다고 센터에 찾아오고 있으니까요.

우에노 :그렇지만 "남편과 헤어지고 싶다고 하면서, 당신은 왜 헤어지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것은 추궁하는 것이 아닌가요? 적어도 본인들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을 까요?

노부타 :본인에게 "왜 헤어지지 않나요?"같은 말은 하지 않아요. 헤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센터를 찾아온 것이고, 혹은 좀더 다른 문제를 안고 있거나 해서, 절벽 끝에 서있는 심정으로 오니까요. 그런 때에 "왜 헤어지지 않나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우에노 : "제가 싫다면 다른 곳에 가주십시오"라는 한마디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 수 있는가 없는가 판가름하는 것이 관건이겠네요.

 

우에노 :..생협은 자조, 공조, 상조 중에서도, 상조를 선택하고 있는데, 상조란 서로 돕는 것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측면과 도와주는 측면에서, 서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관계가 되면 상조 체계가 지속될 리가 없다. 그래서 상조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까지 책임지려는 순간, 당신네들의 시스템은 붕괴한다.

 

우에노 :....성적인 행위와 성적이지 않은 행위 사이에 큰 차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 피해자 본인이 아닙니다. 가해자가 먼저 그것을 특별한 행위로 의식하고 있었어요. 가해자는 그것이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나쁜 행위라는 것도 자각하고 있었어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은 피해자 쪽이죠. 가해자도 '사랑'이라는 똑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재배욕과 소유욕을 바꿔 말한 것에 지나지 않고요. 그리고 피해자는 '사랑'이라는 말로 은폐되어온 '현실'을 나중에서야 직시하고 재정의한다는 것이죠. 어쨌든 성적인 행위가 지배와 소유의 각인이 된 것은, 근대가 성에 부여한 특권적인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양쪽 모두, 근대의 성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겟죠.

 

우에노 :...특정한 집단 안에서는 분배의 평등을 실현하지마, 그러나 그 특정 집단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한다는 거죠. 재정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어오십시오"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우에노 : 일이란 생계 수단 입니다. '세상살이'와 '좋아하는 일'이 일치할 수 있다는 정말 딱한 환상이 존재해요. 그런 환상을 무라카미 류는 [13세의 직업소개소]라는 책으로 선동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제가 한 일에, 왜 남이 돈을 준다고 생각해? 남에게 도움이 된 일이었기 때문에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는 거잖아. 이걸 깨달았으면 조금은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혀. 마사지도 어학 능력도 남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돈을 받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돈 받을 생각하지 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자기 돈 내고 하는 거야, 이 멍청아"라고.

 

우에노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저는 의문을 가져 왔습니다. 왜 내가 사는 것에 타인의 승인이 필요한가? 왜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면 안 되는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나는 삶의 가치를 잃게 되는 걸까?

.....

우에노 : 일본에는 여자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통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늙어서 사랑받지 못하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건가요? 저는 딱 질색입니다. ....략..."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귀엽지 않던 내가 앞으로 갑자기 귀여워질 리가 없잖아요"...략..."갑자기 귀여워질 수는 없어요. 앞으로 귀엽든지 귀엽지 않든지 관계없이, 노인은 제대로 부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에노 :재미있는 것은, 그런 고령자 모임에 나가서 보면, 거의 정해진 것처럼 남자가 와서 "나이를 먹어도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끝없이 해대요. 남자란 정말 몇 살을 먹어도 구제할 길이 없어요. "사회적 승인 없이는, 당신은 살아가지도 못해?"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우에노 : .... 이 가계 분리 원칙은 부모와 자식이 동거하는 경우에도 엄격하게 지켜지는 추세입니다. 부모의 경제적 부담 능력을 넘는 부양은 하지 않는다는 거죠. 자식 세대는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만, 부모를 위해 자기 돈을 쓰지는 않아요. 그래서 돈이 없는 노년층의 노후는 앞으로 상당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또 하나는 통계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만, 부모와 함께 살거나 따로 살거나 상관없이 부모 부양을 떠맡고 있는 한 사람이 있는 경우, 다른 사람들은 거의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양을 떠맡은 사람의 부담이 크고 동시에 고립되기 쉽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에노 :피해자로 계속 남아 있는 것 자체가, 그대로 가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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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독서 2012. 4. 26. 11:20

 

 

 

서문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비평가는 아름다운 사물에서 받은 인상을 다른 방식으로 또는 새로운 재료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다. 비평 최고 형태와 최저 형태는 둘다 자서전의 양식이다.

 

도덕적이거나 부도덕적인 책은 없다.

책은 잘 쓰여 지거나, 아니면 못 쓰여 질 뿐이다. 그게 다다.

 

예술이 진정으로 반영하는 것은 관객이지 삶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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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식이 필요한 직없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게. 어쩌면 그리 완벽하게 추악할 수 있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하는 축은 못생기고 멍청한 이들이야. 이들은 마음대로 편안하게 입벌리고 앉아서 연극을 구경하듯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네. 승리에 대해ㅐ 아는 바가 없다면, 최소한 패배가 무엇인지 아는 고통은 면제받은 사람들이야. 평안하고 태평하며 동요 없는 삶.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만 살 수 없는 삶을 이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네.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파멸을 가져다 주지도 않을 뿐더러 모르는 자로부터 파멸당하는 법도 없네.

 

단 한 번도 도덕적인 말을 하지 않지만, 단 한 번도 잘못한 행동을 하지도 않지. 자네의 냉소주의는 단지 포즈일 뿐이야.

 

웃음은 우정을 시작하는 썩 좋은 방법이야. 그리고 절교의 방법으로는 단연 최상이고 말이야.

 

자네는 모든 사람을 좋아해. 다시 말하면 그건 자네가 모든 사람에게 무심하다는 거야.

 

나는 그들의 그 천박한, 탐색하는 눈앞에 내 영혼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아. 나의 심장은 결코 그들의 현미경 위에 놓이지 않을 거야.

 

예술가는 아름다운 사물을 창조해야지 하지만, 자기 삶에 속하는 그 무엇도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네. 우리는 사람들이 예술을 마치 일종의 자서전으로 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상적인 감각을 잃어버렸어. 언젠가 나는 셰계에게 그 감각이 무엇인지 보여 줄 걸세.

 

천재성이 아름다움보다 더 오래간다는 건 의심의 여지 없이 진실이야. 넘치도록 교육받고자 우리 모두가 그토록 애쓴다는 사실을 바로 저걸로 설명할 수 있을 걸세. 존재를 위한 격렬한 투쟁에서 우리는 오래 남을 수 있는 뭔가를 갖기 원하고, 따라서 우리의 정신을 쓰레기와 사실들로 채우는데, 그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희망 때문인 거야,. 모르는게 없는 사람. 이것이 현대의 이상이지만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의 정신은 끔찍한 것이라네. 그것은 마치 허섭 스레기만 팔고 있는 가게 같아서, 그 안에는 괴물과 먼지 밖에 없으면서 이 모두가 공정가 이상의 고가가 적힌 가격표를 날고 있지.

 

둘 다 이런저런 미덕의 중요성에 대해 긴 시간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들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필요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미덕에 대해. 부자는  근검절약의 가치를 말했을 것이고, 게으른 자는 노동의 존엄성에 관해 매끈한 연설을 했을 것이다.

 

영향이란 건 다 나쁜 영향일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자기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열정으로 불타오르지도 않지. 그의 미덕은 그에게 진정한 미덕이 될 수 없어. 그의 죄악은, 만일 죄악이라는 게 있다면 말일세. 그 죄악은 빌려 온 것일 뿐이야. 그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음악의 메아리가 되고, 그를 위해 써진 게 아닌 각본 속의 배우가 되거든.

 

인생의 목적은 자기 계발에 있어.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한다. 이것이 우리 각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인 거야.

 

행동은 정화의 한 형태니까. 남는 것은 쾌락의 기억 또는 회한이라는 사치 뿐이야. 유혹을 사라지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유혹에 지는  것. 저항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그것이 스스로에게 금지한 것들을 향한 갈망으로 병들 것이며, 영혼의 괴물 같은 법칙이 끔찍하고 불법적이라고 규정한 것들을 향한 욕망으로 병들거야.

 

자네는 자네가 알고 싶어하는 것만큼 알지는 못해도, 자네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을 알고 있네.

 

자신의 실체를 보는 일이 왜 타인에 의해 일어나야 하는가?

 

완벽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살 시간은 앞으로 몇 년 뿐일세. 자네의 청춘이 사라지면 자네의 아름다움도 그와 함께 사라질 거야. 그리고 자네는 불현듯 자네에게 그 어떤 승리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 테고, 아니면 과거의 기억 때문에 패배도다 더욱 쓰라리게 여겨지는 그저 평범한 승리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일세. ................략...............세계는 한 철 동안만 자네의 것이야. ...

 

여자들은 로맨스를 영원히 지속시키려다가 번번히 망쳐 버리네. 그건 무의미한 단어이기도 해. 변덕과 일생에 걸친 열정이 유일하게 다른 건 변덕 쪽이 좀더 오래간다는 걸세.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 있지도 않은 그것에 사람들이 얼마나 수선을 떠는지. 심지어 사랑이라는 것도 전적으로 우리 몸의 욕구와 관련된 문제야.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젊은 남자들은 한 여자만 사랑하고 싶어하지만 몸이 여러 여자를 원해. 늙은 남자들은 여러 여자를 사랑하고 싶어하지만 몸이 따라 주질 않는다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일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에는 극도로 매혹적인 무엇이 있었다. 그 어떤 일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에 비하지 못하리. 나의 영혼을 어떤 우아한 형태로 다듬어 상대에게 투사하고 내 영혼이 상대의 영혼 속에 잠시 머물도록 하는 것. 나의 지적인 견해에 상대가 열정과 청춘을 더해 더욱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주는 것을 듣는 것. 나의 기질이 신비한 액체나 향수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 그 안에는 진정한 기쁨이 있었다.

 

그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르는 잘 알려진 규칙에 따라, 공적인 삶에서는 자기가 속한 당의 지도자를 따르지만 사적인 삶에서는 가장 뛰어난 요리사를 추종하고, 토리당원들과 식사하지만 사고방식은 자유주의자들과 함께하는 인물이었다.

 

그에겐 유머의 신이 입다 버린 헌 옷들로 가득 찬 옷장이 있었다.

 

저는 잔인한 힘은 견딜 수 있지만 잔인한 이성은 견딜 수 없습니다. 잔인한 이성을 사용하는 데에는 무엇인가 부당한 면이 있어요. 지성보다 아래에 있는 것을 가격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헨리 경은 도리언 그레이의 두 눈이 자신에게 못 박혀 있는 것을 느꼈고, 청중사이에 매혹시키고 싶은 한 인물이 있다는 의식이, 그의 기지를 날카롭게 하고 상상력에 색채를 더해 주는 듯 보였다. 그는 빛나는 지성과 거칠 것 없는 상상력, 개의치 않는 무책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독특한 여자로, 그녀의 옷은 언제나 격분 속에서 디자인하고 태풍 속에서 입혀진 것 같았다. 늘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있었고, 그녀의 열정이 결코 보답받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품었던 환상을 모두 간직할 수 있었다. 그녀는 화려해 보이기 원했지만 할 수 있었던 건 단정치 못한 차림뿐이었다.

 

남자들은 인생에 지쳤기 때문에 결혼하고, 여자들은 결혼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결혼한다네. 그리고 양쪽 모두 실망해.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가는 게 두렵지만 않다면 두 번 보지 앟고 내다 버릴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우리삶에는 있네.

 

개인적으로 만나 즐겁고 매력 있는 예술가로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예술가로서는 저급이었네. 뛰어난 예술가는 자신이 창조하는 것 속에서만 존재하고, 그 결과 예술가 자신은 더할 나위 없이 재미 없는 인물이라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오해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경험에는 윤리적 가치가 전혀 없었다. 경험은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붙인 이름일 뿐이었다.

 

경험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과거와 마찬가지이리라는 것, 우리가 혐오감에 몸을 떨며 저질렀던 죄악을 즐거워하며 저지르고 또 저지르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와 같은 감정적 수준에서 이 장면을 계속 연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을 중지시켰다. 짐가방을 아래로 운반해야 했고 목도리를 찾아야 해다. 하숙집의 잡역부가 법석을 떨며 들락 날락 했다. ....략...........극적인 순간이 천박한 세부 속에 사라져 갔따.

 

이제 나는 그 무엇도 인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네. 인정이나 부정은 삶에 대해 취하기에는 아주 멍청한 태도야. 우리의 도덕적 편견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라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말에 결코 주목하지 않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에 결코 끼어들지 않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길 즐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두렵기 때문일세. 낙천주의의 근거는 절절한 공포감이야.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 관대하다고 믿는 건,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미덕을 소유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야. ...략....내가 했던 말은 모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네. 나는 낙천주의를 그 이상 경멸할 수 없어.

 

파멸한 인생이라면, 성장이 멈춘 삶만큼 파멸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 본성을 훼손하고 싶다면, 그 모양을 바꾸기만 하면 되네.

 

결혼이 뭐죠? 취소할 수 없는 맹세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당신이 결혼을 조롱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죠. 아! 조롱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취소가 불가능한 맹세입니다. 그녀의 신뢰가 내게 영원을 약속하게 하고, 그녀의 믿음이 나를 선하게 만듭니다.

 

여자들은 남자에게 걸작을 쓰겠다는 욕망이 생기도록 영감을 주지만, 언제나 그 욕망의 실현을 좌절시키고 말지.

 

도리언, 자네는 언제나 나를 좋아할 거야. 나는 자네에게, 자네가 저지를 용기가 없어 저지르지 못했던 모든 죄악들을 상징하는 사람이니까.

 

당신이 나의 사랑을 죽였어. 당신은 한때 나의 상상력을 뒤흔들었지만, 이제는 나의 호기심조차 자극하지 못해. 당신을 보아도 아무 느낌이 없어. 나는 당신이 빼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천재성과 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시인의 꿈을 현실로 표현하고 예술의 그림자에 모양과 내용을 주었기 때문에 사랑했어. 당신은 이 모두를 내다 버렸어. 당신은 천박하고 멍청한 사람이야.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아주 많았던 건 아니지만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몇몇 있었던 것은 사실일세. 그들은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게 된 후에, 아니면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후에도 계속 살아갈 것을 고집했네. 그들은 살찌고 지루한 사람들이 되었고, 나와 만나면 곧장 회상에 잠기네. ......그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몰라! 인생의 다채로운 색채를 빨아들여야 하지만 세부를 기억하면 안된다네. 세부란 언제나 천박한 것이야.

 

헨리경에게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 지닌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진정한 애정을 느끼기에 그는 너무나 영리하고 또 너무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기이한 열광과 도취로 그를 채울 누군가가 그의 삶에 있을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삶이 우리를 위해 간직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일까?

 

영국 사람들이 하는 잡담이란 게 어떤 건지는 나도 잘 압니다. 중산 계급의 사람들은 천박한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아 자신들이 가진 도덕적 편견들을 공기 중에 토해 내고, 자기들보다 나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그들의 말에 따르면 '방종'을 속삭이는데, 그건 자기네가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착각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음해하는 사람들과 자기들이 친밀한 관계에 있음을 과시하기 위하여 그러는 겁니다. 이 나라에서는 남다른 품위와 두뇌를 갖는 것만으로도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입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어요. 스스로 도덕을 부르짖는 사람들, 이 사람들 자신이 영위하는 삶이란 도대체 어떤 거죠? 이봐요, 당신은 우리가 지금 위선자의 원산지 국가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어요.

 

친구들에게 끼치느 영향으로 한 사람을 판단할 권리가 인간에겐 있는 법이야. 자네는 친두들에게 쾌락을 향한 미친듯한 열정만을 자극해. 자네 친구들은 그래서 깊이 모를 심연으로 추락해 간 거야.

 

덜 떨어진 목사의 특징은 설교하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라는 말로 입을 열고는 곧 제가 한 말을 스스로 배반하는 데 있다.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에 대한 기억 속에서 빛을 발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죄악이 있다. 열정보다는 자부심을 만족시키는 기이한 승리감, 감각보다는 지성에 숨가쁜 도취감을 가져다 주는 죄악이 그랬다. 하지만 간밤의 살인은 이런 죄악이 아니어싿. 그것은 정신에서 몰아내야할 기억, 아편으로 잠재워야 할 기억, 그것이 사람을 목조르기 전에 목 졸라 살해해야 할 기억이었다.

 

인생의 모든 걸 알았다고 하지 말하지는 말아요. 인생의 모두를 알았다고 남자가 말할 땐, 실은 인생이 그를 끝장낸 거니까.

 

전 남자라면 미래가 있는 사람이, 여자라면 과거가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착오를 대신 짊어지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인간에겐 각자 살아야 하는 자기의 삶이 있고,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대가 역시 각자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 가엾은 것은, 한번의 잘못 때문에 여러 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뿐. 진실로 우리는 거듭 대가를 치르고 또 치른다. 인간과 거래하면서 운명의 여신은 결코 장부를 덮지 않는다.

 

실제의 삶이 혼돈이건만, 상상의 세계엔 끔찍하도록 논리적인 뭔가가 있었다. 죄악의 발꿈치를 쫒아가 물도록 개를 푸는 것이 상상력 이었다. 모든 범죄가 기형의 새끼를 치도록 하는 것이 상상력 이었다. 사실로 구성되는 실제의 세계에서 사악한 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선한자가 보상을 받지도 않았다. 강자가 성공을 차지하고 약자에게 실패가 던져지는 거싱 전부 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해도 양심이 그처럼 무서운 환영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사람의 눈앞에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밤이고 낮이고 그가 지은 죄의 그림자들이 조용한 구석에 숨어 있다가 그를 곁눈질하고,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그를 조롱하고, 만찬의 식탁에 앉을 때 그의 귀에 속삭이고, 얼음장 같은 손으로 잠들려는 그를 깨운다면 그의 삶은 어찌 되겠는가!

 

"해리, 당신을 경구 하나를 내놓기 위해 그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겁니다. "

"세상은 자기 스스로가 원하는 한에서 자발적으로 제단에 올라갈 뿐이야"

 

"내가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그 열정을 잃어버렸고, 그 욕마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너무 몰두하고 있어요. 나의 성격, 나의 개성이란 게 나에겐 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도망쳐 어디론가 멀리가서 나를 잊고 싶어요.

 

인간이 문명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은 단 두가지. 하나는 교양을 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락하는 것일세.  시골 사람들에게는 이 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둘 다 박탈되어 있어. 그래서 그들이 정체하는 거야.

 

늙은 사람의 비극은 늙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은 늙었음에도 여전히 젊다는 데에 잇어.

 

나는 자네가 일생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앗다는 사실, 자네 자신이 되는 것 말고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네! 자네에겐 삶 자체가 예술이었어. 자네의 움직임이 음악이었지. 자네가 살았던 나날이 소네트 였다고.

 

자네 진정 설교를 하려 드는군. 좀 있으면 개종한 사람의 열정을 가지고 신앙 부흥을 외치며 돌아다니겠어. 이제 자네에겐 지겨워진 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짓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말이야. ......략......그래봤자 소용도 없다네. 현재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일 수 밖에 없고, 미래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일 수 밖에 없네.

 

그가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죄악이 그때끄때 확실하고 신속한 벌을 내렷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정화를 가능케 했다. 가장 공전한 신에게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니라 '우리 죄인을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

 

================================================

 

오스카 와일드의 반박문

 

예술가가 하는 일은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가 하는 일은 현실에 없는 것을, 또는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상상에서 나온 문학 작품에 검열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나와 내가 아는 모든 문인들이 그 무엇보다 앞서 거부할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고 믿는 비평가가 있다면, 그는 바로 그 순간에 문학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문학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비평가는 예술 작품을 예술가의 성격에 대한 어떤 언급없이 비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상 여기서 비평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학과 문학 작품에 대하여 그에게 전혀 비평적 안목이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일 따름이며, 그런 안목의 부재는 문학에 대해 글을 쓰는 자라면 그 어떤 종류의 악의를 갖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무능력입니다.

 

내 책을 비평한 신사는 예술과 인생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희망없는 혼란에 빠져 있고, 예술의 소재에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그를 도와주려는 당신의 시도는 상황을 조금도 낫게 하지 못합니다. 행동에 제약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맞습니다. 예술에 제약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 그건 맞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존재하지 않는 모든 사물이 예술의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

 

작품해설

 

댄디는 경멸의 가면 아래 19세기의 천박함과 범용함에 대한 혐오를 감춘다. 그는 예술을 통해 우아함을 성취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신을 독창적인 존재로 만든다. 그는 자신을 우월하게 만듦으로써 저주받은 사회와 대결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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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2. 4. 23. 12:53

7월에 이어 8월 역시 떨어진 체력이 바닥에서 헤메인 달이었다.

일정자체가 바빴다면 어떻게든 이를 악물었겠지만, 늘어지려면 늘어질 수 있는 일정이라 정신줄이고 일줄이고 더 많이 놓고 다니지 않았나 싶다

 

1년차 의국은 로딩이 크지 않고, 같이 의국이었던 선배들도 워낙 배려많은 성격이라 오히려 챙겨줘서 불편할 정도였다.

좀 빠릿하게 하면 내 편에서 더 잘 챙길 수 있는 것도 선배들 손을 많이 빌려서 나도 결국 누울 자리 보고 발뻗는 인간인가 조금 반성도 했더랬다.

 

오랫만에 공부할 시간이 많은 일정이라, 지식을 알차게 쌓으리라는 결심과는 무관하게 몇개의 발표마저도 참 허접스럽게 해서 의기소침이 많이 되었다.

오랫만에 해서 그래..라는 핑계는 예전에도 잘 했던 사람이나 할 수 있을 것 같고-.-;;

워낙도 자료 정리도 발표도 참 못했는데, 그걸 또 닥쳐서 하다 보니 더더욱 부실한 발표여서 모두를 실망시킨 한달이지 않았나 싶다.

 

중간에 휴가가 있었고, 시댁 및 친정 세심?하게 배분해서 휴가를 보냈으나 어디서든 내가 한건 한가지 였다. sleep..sleep..sleep..

사실 시댁에서는 그럴 생각 없었는데 도저히 내려와서 올라올때까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간의 피로와 긴장이 풀리면서 눈을 뜨고 제대로 사회적인 행동이나 말을 할 기운이 없었다.

내가 의사인 것을 좋아하는 시댁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아서 보면 니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길래, 시댁을 우습게 보고 등등 .. 속 터지는 비아냥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들 어디 가서도 잘자리만 찾는 나를 잘 이해해 줬다.

세세한 내막을 몰라도 이해의 액션을 취해주는 것, 그게 고맙다.

 

의국은 앞으로도 많이 있으니까, 다음엔 잘해야지 다음엔 잘해야지 그 생각을 제일 많이 했었다,

그만큼 몇안되는 일도 참 못나게 했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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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독서 2012. 4. 12. 18:02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하고 무재 씨가 나무뿌리를 잡고 비탈을 내려가느라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략.............................................................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 약품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림자가 일어서더라도,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는 거예요.

 

농부의 아내가 불을 끄자 문득 눈앞이 닫힌 것처럼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들어 올려서 얼굴 쪽으로 천천히 내려 보아도 그 손이 보이지 않았다. ..............략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을 의심하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가마와 가마와 가마는 아닌 것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게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마링지. .......략....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여 씨 아저씨는 삼십 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음향 기기 수리를 하고 있었다. 기술에 비해 수리비는 저렴하게 받는 편이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답답하게 여겨질 만큼 느긋한 면이 있어서 까다롭거나 무례한 손님을 만나면 종종 다툼이 벌어졌다. 여 씨 아저씨는 그런 손님들의 물건 안쪽에 페인트로 조그만 표식을 해 두고 그 후 에 그 손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든가 모르는 척을 하고 기계를 맡겨 오면 뚜껑을 따 놓고 페인트 자국을 확인하며 이 자식 이거 그때 그 자식. 이라며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런 다음엔 이쪽에서도 모르는 척, 기계를 수리해서 돌려보내곤 했다.

 

유곤씨는 뭘하러 왔던 걸까요. 라고 물으면 외로워서 들른 거라고 여 씨 아저씨가 말했다.

유곤 씨가 외로운가요?

외롭지.

수리실을 자주 드나드는 상가 오디오 상인 중엔 저런 자에게 뭘 돈을 주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여 씨 아저씨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입을 먹는 입

 

팔월엔 비가 내렸다. 거의 매일 내렸다. 퍼붓듯 쏟아지다가 반짝 갰다가 꾸물꾸물 어두워졌다가 툭툭 떨어지다가 다시 한차례 퍼붓고 점차 가늘어져서 그 비가 밤새 이어지는, 뒤끝 있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불이 묵직해서 이따금 보일러를 틀어 두고 잤다.

 

해롭다거나 해롭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기준의 문제입니다. 내 기준으로 쥐며느리는 충분히 해충입니다. 사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유라고 해봤자 심미적으로 보기에 좋지 않다는 정도라지만 말입니다. 쥐며느리라는 것은 아주 작은 데다 여러 개의 발로 매우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그런 생물이 내가 잠든 사이 귀로 들어오거나 한다면 괴로울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주 귀로 들어오나요?

라고 묻자, 만에 하나, 라면서 유곤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귀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무재 씨가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별로, 라고 나는 말했다.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은데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의기소침하고 있던 참이에요.

...............략..................

툭, 툭, 하는 소리를 우산 속에서 듣다 보니 재미는 몰라도 의기소침 했던 것이 얼마간 가라앉는 듯했다.

 

 

정전

 

비가 그치고 난 뒤로 무더위가 이어졌다. 하늘은 새파랗게 솟는 듯하고 구름도 희고 두꺼워서 보기엔 좋았으나 낮이고 밤이고 무더웠다. 햇빛 속을 조금만 걸어도 끈끈한 땀이 솟아서 불쾌한 느낌으로 이마가 식었다.

 

별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나는 아버지가 산 물고기들을 욕실에 이렇게 놓아두는 것이 싫었다. 사나흘 걸러 아버지가 잡아들이는 민물고기의 기척으로 집 안이 비려지는 것이나, 세수를 하려고 수도꼬지나 세면대를 잡았다가 손바닥에 비늘 조각이 들러붙는 것이나, 소변을 누려고 변기에 앉았다가 타일 벽에 말라붙은 비늘을 보게 되는 것이나, 밤에 불을 끄고 방에 드러누우면 물고기들이 빡빡 질식해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등등을 가만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이 아버지 손에서 컸다.

도시락은 성실하게 챙겨 주되 반찬은 단무지, 라는 식으로 무심하다면 무심하고 본래가 무뚝뚝하다면 무뚝뚝하다고 할 수 있는 양육이었다. 별다른 대화도 없는 부녀간이었다.

 

비질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고 나가 보니 계단에 검은 것이 엎드려 있었다.

매미였다. 배가 굵었고 한쪽 날개 끝이 찢어져 있었다. 죽었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자 건드리기만 해 보라는 듯 뭉퉁한 가슴과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나는 열일곱 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따돌림이 있었다. 아이들 일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는 일들을 더러 겪었다. 괴롭히는 처지에서도 괴롭히는 것이 지루해지고 귀찮아지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길에서 동급생과 마주쳤다. 길 저 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괴롭히는 무리 안에서도 괴롭힘이 유난했던 아이라서 나는 틀림없이 시비를 걸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장한 채로 고개를 들고 걸어갔는데 막상 그쪽에선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며 나도 지나갔으나 이튿날 무리 속에 섞여서 열심히 괴롭혀 대는 그녀를 보면서 뭔가가 맥없이 무너졌다. 이런 이상한 악의를 무심한 듯 버티는 것도 무상해지고, 무리 틈에서 더는 애를 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방을 가지고 학교를 나섰다. 바보들, 바보들 하고 생각하며 집까지 걸어와서는 저녁에도 바보들, 바보들,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튿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전화할게요. 해 두고 가는 무재 씨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데도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아서, 아 그럼 됐다, 고 나는 혼자서 토라져 있었다.

 

그만둘까요.

어째서요.

이런밤에 이런 이야기는 너무 얄궂어서요.

얄궂을 것이 있나요?

아버지는 죽어서 빚을 남기고 소년은 빚을 갚으며 어른이 되어 간다는 이야기이므로.

그렇게 되나요.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고, 빚의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지고, 전심저력으로, 그 틈에 점점 불어나는 먹고 사는 비용의 빚을 져 가는 일의 연속.

 

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원 가량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 일개. 사십 개를 사면 사십일 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심일 개, 백 개를 사면 백한 개, 하며 매번 살 때 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가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무재 씨, 원 플러스 원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무재 씨도 그런 것을 사 본 적 있나요.

가끔은.

하나를 사면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준다는 그것을 사고 보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각은 어째선지 들지 않고요.

그러고 보니.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오무사

 

오무사는 전구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얼핏 지나가면서 우연히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그런 가게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갈 수 있는 가게였다.

 

바쁜 일로 서두르며 오무사까지 걸어갔어도 그거 주세요, 하고 난 뒤로는 오로지 그의 패턴으로만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오무사를 방문한 손님들은 입구에서 넋을 놓고 선 채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거나, 근처 구멍가게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기다렸다가 전구를 받아 가곤 했다. 노인은 느릿해도 대단히 집중해서 움직였으며 그 움직임엔 기품마저 배어 있어서, 손님의 처지에선 재촉할 틈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당장 철거되는 것은 다섯 개의 건물 중 가동 하나뿐인데도, 기사 제목이 일률적으로 전자상가 철거로 마치 상가 전체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듯 구성된 것을 두고는, 그런 식으로 미리 상권을 죽여서 이후의 일을 쉽게 도모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죽어가고 있는 놈더러 자꾸 죽어라, 죽어라, 한다며 여 씨 아저씨는 입맛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은교 씨는 슬럼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가난하다는 뜻인가요?

나는 사전을 찾아봤어요.

뭘라고 되어 있던가요.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 하며 무재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략....................

나는 슬럼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어도, 여기가 슬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나는 이 부근을 그런 심정과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데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 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항성과 마뜨료슈까

 

그런 방식으로, 축제가 벌어지면 나동 북쪽 외벽과 정면 진입로엔 장막이 걸렸고, 그 뒤쪽엔 아무것도 신경 쓸 것이 없다는 듯 고성과 방가가 이어졌다. 장막 저편이 시끌벅적해질 수록 나동은 없는 듯 어두워지고 적막해졌다. 나동의 남쪽 외벽과 엘리베이터 곁엔 사십 년 된 나동이 아직 장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십 년은 더 장사를 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과 알림 쪽지가, 어째선지 몹시 더렵혀진 채로 붙어 있었다.

 

나는 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잔뜩 있는데도 그중에 뭐라고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자전거 핸들을 꽉 잡았다가 느슨하게 놓았다가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무재 씨는 침착하게 무를 고른 뒤에 쪽파로 할까요, 실파로 할까요, 라며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의 뒤쪽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박스를 줍는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동네에서 거기까지 박스를 주우러 온 할아버지를 맞닥뜨려서, 다툼이 일어난 거예요. 뭔가 시끄러워서 나가 보니 대낮에 길 복판에서 박스와 넝마 몇 가지를 두고 고래고래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어요. 나로선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오가고 두 노인이 서로 격렬하게 저주하며 상대방의 손수레에서 넝마를 끄집어내 던지다가 할아버지는 가고 할머니가 남았거든요. 할머니가 분하고 원통하다고 가슴을 두드리며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요. 능소화가 늘어진 콘크리트 블록 담 앞에서 그녀의 그림자가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머리를 그녀 쪽으로 기울이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요.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그 길엔 넝마가 실린 그녀의 손수레가 남아 있었어요. 한낮에 그걸 보고 나도 집으로 들어갔는데 해 질 무렵에 나와 보니 그대로 수레가 남아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일까, 히고는 말았는데 이날 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였어요. 마당에 넘어져 있는 그녀를 동네 사람들이 발견했어요. 지병 때문에 가슴이 굳은 것이라고 당시 어른들이 말했지만 나는 그들이 쉬쉬하며 수순거리는 것처럼, 그녀가 결국 그림자를 견디지 못해서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식들이 찾아와서 장례를 치르고 난 뒤로도 그녀의 손수레는 며칠이고 모퉁이에 남아 있었엉. 실린 것도 몇 가지 없이 박스 몇 개하고 스티로폼 조각하고 비닐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것들 때문에 죽는구나, 사람이 이런 것을 남기고 죽는구나, 생각하고 있다가 조그만 무언가에 옆구리를 베어 먹힌 듯한 심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 갔다는 이야기예요.................................략...................................................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며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략..................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런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하늘이 굉장하네요.

네.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역시 유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별이요?

시끄럽고 분주하고 의미도 없이 빠른 데다 여러모로 사납고.

.... 무재 씨, 그건 이니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 같아요. .....략.....

아무튼 이런 광경은 인간하고는 너무도 먼 듯해서, 위로가 되네요.

 

충분히 갈 수 있다는 대답을 듣고도 나는 불안했다. 은교 씨, 뭘 그렇게 걱정하나요. 너무 어두워서요. 밤이니까 어둡죠. 그게 아니고요. 너무 어두워서, 정말로 밝은 곳에 당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요. 말도 안되는데요 무재 씨, 자꾸자꾸 드네요, 그런생각이.

 

....이렇게 어두운데 누굴 만날 줄 알고요.

만나면 좋죠, 그러려고 가는 거잖아요.

만나더라도 무재 씨, 그쪽도 놀라지 않을까요, 우리도 누구라서, 라고 말하자 무재 씨가 고개를 기울이고 나를 바라 보았다.

 

 

작가의 말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몇 있으므로

세계가 그들에게 좀

덜 폭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 세계는 진작부터

별로 거칠 것도 없다는 듯

이러고 있어

다만

곁에 있는 것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거나 하는

초자기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

 

 

작품해설  (신형철, 문학평론가)

 

이 소설을 몇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도심한복판에 사십 년 된 전자상가가 있다.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내력이 하나씩 소개된다. 그 와중에 이 소설은 시스템의 비정함과 등장인물의 선량함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과연 살 만한 곳인지를 묻는다.

이 소설을 두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소설은 우선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이 사랑은 선량한 사람들의 그 선량함이 낳은 사랑이고 이제는 그 선량함을 지켜 나갈 희망이 될 사랑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윤리적인 사랑의 서사가 되었다.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절로 된 장시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고맙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글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1. 현실 - 자명성의 해채

 

문학의 할 일 중 하나는 우리가 현실에 관해 생각한는 것을 방해하는, 자명함에 관한 그 잘못된 믿음을 해체하는 일이다. 이런 공간에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말 글대로 실감하게 하고, 나의 공간과 삶이 소위 현실이라고 하는 것과 분리돼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일이다.

 

2. 환상 - 불행의 단독성

 

황정은이 환상을 동원하는 까닭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방금 짚어 본 대로 인물들이 겪는 불행이 현실 안에서 현실적인 수단으로는 맞설 수조차 없는 종류의 것일 때, 소설가는 그 극한의 불행을 어떻게 소설화해야 하는가, 이것은 미학(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자세)의 문제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불행들을 전해 듣지만 그 불행들은 상투적인 표현들로 이차 가공되면서 그 단독성을 상실하고 일종의 정보들로 추락하고 만다. 너무나 많은 불행이 있고 우리는  그 불행에 무뎌진다. 앞에서 소설가들은 현실이라는 개념의 자명성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같은 방식으로, 소설가는 '불행의 평범화'에 맞서서 '불행의 단독성'을 지켜 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 환상이라는 장치가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한 은행원을 벌레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불행이 여전히 기억되는 것처럼,.....략........................

이것은 그 무슨 발랄한 현실일탈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일무이한 불행들에 대한 소설가의 예의다.

 

그러니 이 작가의 환상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라면 상투적인 표현만큼이나 지나치게 유려한 표현도 때로는 비윤리적일 수 있다는 결벽증이 낳은 자구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3. 언어 - 일반화의 폭력

 

모든 낱말들에는 때가 묻어 있다는 것, 그래서 시인이라면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런즉 '언어상황의 청소'가 먼저 이루어져야 겨우 한 낱말과 손을 잡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언어와 서먹해지는 순간을 겪는다.

 

소설가는 언어의 일반성과도 싸워야 한다.

이 작아의 이런 작업 때문에 우리는 익숙한 말들 앞에 처음 인 듯 서게 된다.

 

4. 대화 - 윤리적인 무지

 

A는 B일까요?음, 아닐까요? 그렇죠, 역시 그런 것일까요?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대화가 조금 이상해 보이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왜일까. 대화들에 응당 개입하곤 하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 아닌지.

여기에는 독단적인 판단이 없고 그 판단의 강요가 없으며 효율을 위한 과속이 없다. 그 대신 어떤 윤리적인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대화를 느리고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말해야 할까. 언뜻 천진무구해 보이는 이 대화는 사실 전력을 다해 이루고 있는 대화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현실의 자명성, 불행의 평범성, 언어의 일반성 등으로 규정해 온 어떤 요소들을 대화 안에 들여놓지 않기 위해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대화를 어떻게 명명하면 좋을까. 나는 이것을 '윤리적인 무지'의 대화라고 부르고 싶다.

세속적인 이해타산에 너무나 밝은 우리들의 대화는 똑똑하게 슬프고, 그런 것들에 무지한 이 인물들의 윤리적인 대화는 어쩐지 무의미해 보이면서 아름답다.

 

5. 사랑 - 연인들의 공동체

 

그들 자신은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 둘의 만남만큼 아프고 의연한 사랑을 함부로 상상하기 어렵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연인의  가마를 유심히 보면서 그를 유일 무이한 단독자로 발견해 내는 일이고, 설사 내가 쇄골이 반듯한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쇄골이 반듯하지 않은 연인에게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라고 말해 주면서 그 단독성을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절대화하는 일이다.

 

이 사랑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간절함은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응원하는 심정과 닮아 있다.

 

 

이런 소설을 읽은 것이다.

현실의 자명성, 불행의 평범성, 언어의 일반성, 윤리적인 무지, 연인들의 공동체... 저렇게 조각내어 말할 수도 있지만, 모든 좋은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도 저 요소들을 표 나지 않게 뒤섞어서는 그저 황정은 특유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정서와 울림을 이룩해 냈다.

 

이 작품은 다시 읽기를 유도하고 또 견뎌 낸다. 이 소설의 문장들은 삶의 터전 바깥으로 비틀비틀 끌려 나가는 사람의 속도로 걸어가고, 이 소설의 상징들은 절반쯤 무너진 건물의 파편들처럼 처연하게 흔들리며, 이 소설의 대화들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가장 진실해질 때의 그 표정으로 오고 간다. 그런 것들이 절규도 환희도 없이, 훈계도 신파도 없이, 170쪽의 짧고 깊은 소설을 만들어 냈다. 근래의 한국 소설이 도달한 가장 윤리적인 절망과 희망 앞에서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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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독서 2012. 4. 5. 10:48

 

닉 에드워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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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웃으며 읽는 의사의 일상

이른바 '4시간 규칙(4-hour rule)'에 따라 응급실에 온 환자의 98%이상에 대해 4시간 안에 진찰을 한 뒤 입원시키든가 퇴원시키든가 결정을 내려주어야 한다는 목표가 설정된 것이다. 애당초 그것은 신속한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정교함이 떨어지고 상식에 어긋나게 시행되는 바람에, 지금은 치료를 방해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왜곡 시키고 있다. 

 

NHS 전체로 보면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었는데도, 그에 따른 전반적인 혜택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지난 몇 년간, 엄청난 재원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병원 근무자들의 사기를 꺾어 버렸다. "돈 이상의 가치"를 얻기 위한 목표가 시행되고 NHS 의 구조와 효율성, 윤리를 위협하는 개혁이 이뤄지면서 NHS는 상호협력과 의료 복지에서 멀어지고 도리어 이윤 창출을 향해 달려가게 되었다. NHS의 창립이상을 신봉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심히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독자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뿐 아니라 풍자적인 이야기와 진지한 이야기까지 다 즐겼으면 좋겠다. 내 관심사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고, 응급실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ACLS A  airway

불필요한 새 표지판에는 돈을 들일 수 있어도, 간호사들이 몸이 아파 쉴 때 교대 인원을 보충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경영자들은 환자 이송 예산을 절감했다는 '효율성' 때문에 칭찬받겠지만, 병원이나 국가의료시스템 전체로 보면 1원도 절약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아침이 되면 환자는 다시 구급차를 타고 요양원으로 이송되어야 하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급차 대원들은 계약사항과 무관하게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환자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관리자들은 단지 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도록 교육을 받고, 여타의 상식은 창밖으로 내팽개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을 바로 환자의 진료와 국가 의료시스템이다. '효율성'이란 명목아래 이뤄지는 엉성한 의사결정이, 결국 그 두가지 모두를 망쳐놓고 있어 너무 속상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폭력'은 병으로 인한 정신착란 상태에서 일어난다. 나는 산소부족이었던 팔십줄의 할머니에게 물려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라 어쩌면 좀 더 주의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건강상태가 좋았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차분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내 속을 뒤집어 놓는 '폭력적인'환자들은 따로 있다. 나를 질리게 하고, 때로는 이 업 자체를 소름 끼치게 만드는 그들은 자기 권리는 전부 주장하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눈곱 만큼도 없는 부류이다.

 

언젠가 내 동료 의사는 계속 불만을 쏟아내며 으름장을 놓는 사람을 심폐소생실로 데려가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그리고 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말한 뒤, 나중에 자기가 당한 심리적 충격에 대한 고소장을 보냈다. 그 후 나의 동료는 다시 이런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지금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 짓는다.

 

병원에서 폭력을 다루기란 매우 어렵다. 경찰을 불러야 할 만큼 누군가를 폭행한다면 오히려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냥 약자를 괴롭히면서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나는 환자들이 더 많은 권리를 누려야하듯이,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또한 더  많은 권리와 보호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진다. 현대의 국가의료 시스템은 환자를 고객으로 간주하면서, '고객은 항상 옳다'고 믿게하지만, 때로는 고객이 옳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응급의학은 단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극적인 드라마가 전부는 아니다. 때때로 의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그 길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지켜보기 힘들지만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옳은 일이다. 의사로서 이런 유형의 상황에 대처하는 판단력은 굉장히 중요하며, 이건 의과대학에서 가르쳐 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련의든 전문의든 전국의 의사들이 환상에서 깨어나 대거 이탈하고 잇다. 이런 결정들은 관련된 개인의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타당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막대한 재능과 돈의 낭비다. NHS에 갈 수록 많은 돈을 쏟아 붓는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극적으로 병원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고 NHS의 잘못이 곧 의사들의 탓이라는 시선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경영진에 지쳐 있으며, NHS내부에서 진행되는 잘못된 개혁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시달린다.

 

거의 한시간 가량 설득했어도 그가 끝내 팔에 주사바늘 꽂는 것을 거부하는 바람에 투약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투약하지 못했다. 서양의학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처방하는 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대관절 응급실에는 왜 왔단 말인가!

 

 

ACLS B breathing

 

급하게 배관공이 필요한데 주위에 배관공이 없다고 해서 전기 기술자를 부르겠는가?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까?

 

사회의 의료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응급실로 달려온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어도, 긴급한 일이 아니어도.

 

의사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환자들이 있다. 의료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하여 의사의 판단을 어지럽힌다.

 

http://randomreality.blogware.com - 어느 구급차기사가 운용하는 이 블로그는 NHS에서 일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잇다.

 

어젯밤 응급실은 생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경찰이 난폭하나 술주정꾼들을 제지하고 있었고, 술먹은 10대들은 구토를 해대며 생난리를 쳤다. 직원들은 재빠르게 움직였고, 대부분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바쁜 줄 알면서 경영진이 단 한 명의 보조 직원도 고용하지 않는 걸 보면, 그들이 아예 우리를 죽이려고 작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대시간이 다가올 무렵, 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악의는 없었지만 같이 있으면 짜증나는 녀석이었다.

 

술 취한 사람에게 수액치료를 하는 건 좀 아이러니 하다. 세금납부자의 돈으로 술 깨는 걸 돕는 것은 술 마신 후 응급실을 가도로고 술꾼들의 행동을 조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술취한 나는 술취한 사람의 경우 숙취를 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많은 양의 수액을 몸에 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술을 깨는 데 도움이 되고 술에 취한 사람 또한, 체내로 들어간 많은 양의 수액  때문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곧 일어나게 되낟. 가끔은 예상과 달리 오줌으로 가득 찬 방광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적당히 퇴원시키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로부터 불평 편지를 받을까봐 환자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꾸짖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환자에게 상해예방 교육을 하지 않는 의사야말로, 오히려 불평편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특정한 행동의 위험성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또 응급실 의사가 짧게 내 뱉는 꾸중 한마디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도 했다.

 

과음환자들이 계속 이어졌다. ....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로 병원을 나서면서,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런 환자들의 행동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두었다가 환자들에게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일요일이다. 게다가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다. 즐겁게 오를만한 산이 있고 구경할 만한 축구 경기도 있다. 남녀가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릴 수 있고, 마실 맥주도 있다. ......그런데, 대체 왜 5시간(정확히 말해서 3시간 59분)이나 응급실에 죽치고 있는가? 오로지 '아무 이상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말이다! 응급상황은 아니지만 걱정이 된다면 부디 담당 주치의를 찾아가라.그리고 다음 번에는 밖에 걸린 표지판을 꼭 읽기 바란다. - 응! 급! 실!

 

나는 이 가여운 친구에세 화난게 아니라 허리 수술 한 번 받는데 8개월 씩이나 기다려야 하는 제도에 화나 있었다. 그는 허리통증 진단을 받기까지 4개월을 기다렸고, 수술 여부를 판단해줄 정형외과 진찰을 받는데 또 4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실제로는 8개월을 기다린 셈인데, 국민건강보험 제도로는 4개월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나마 NHS를 황폐화 시켰던 보수당 집권 시절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요즘은 대가자 명단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단지 비용이 많이 들고 분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자신과 타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이기적이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으며, 지역사회 공공서비스는 제 역할을 못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치의에게 가기 않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모두 응급실로 몰려온다.

 

아이의 심폐소생술을 멈추는 일은 어른보다 어렵다. 먼저 그만 두자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실 의사가 의뢰하는 의사들>

방사선 전문의 - 엑스레이와 컴퓨터단층촬영 영사을 판독하는 의사. 나이 든 의사들은 엑스레이 검사가 불필요한 이유를 잘 설명하는 반면, 젊은 의사들은 검사를 시행할 뿐 아니라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환자에게 여러 가지 관을 삽입한다. 이들을 절대 '방사선 찍사'라고 말하지 마라. 폭발한다.

 

성형외과 전문의 - 전문의 일때는 자기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수련의 일때는 화상환자나 손에 심한 부상을 당한 환자들을 치료 하느라 바쁘다.

 

심장전문의 - 심장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잇는 전문가. 자기들이 심장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환자가 믿게 하는데도 전문가이다. 이들은 '제 때 시술한 스텐트가 환자 목숨을 아홉 번 사린다!'라는 어구를 좋아한다. 아직도 나비 넥타이를 메고 다니며, 그것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부류이다.

 

내과/일반의 - '의학적'이상 증상(이를테면 심근경색, 뇌졸증, 심장마비, 폐렴 등)을 지닌 환자를 돌본다. 되도록 검사를 많이 하고 싶어한다. 비쌀수록 더 좋다.

 

정형외과 의사 - 뼈를 바로잡고, 관절을 교체하기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목수로 알려져 있다. 내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의사끼리 주고받는 농담의 주된 대상이다. 의사들은 '금발머리나 아일랜드인(머저리를 지칭)'이라는 단어 대신 '정형외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키득거린다.

의사들이 즐기는 정형외과의에 대한 농담 몇가지를 소개해 보면 :

- 이중맹검법의 정의는? 두면의 정형외과의가 심전도 파형을 살표보는 것(정형외과의는 심전도 파형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 정형외과의와 목수의 차이점은? 목수는 항생물질을 한가지 이상 안다.

 

류머티즘 전문의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알약을 준다. 일을 그만 둘 때는 환자를 정형외과 의사에게 보낸다.

 

정신과 의사 -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싶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응급실에서는 주로 우울증 환자에 대한 위험평가에 시간을 할애하며 진짜 정신병 환자와 만나는 시간은 많지 않다. 대체로 옷입는 취향이 형편없다. 두터운 트위드 옷에 샌들을 신는다.

 

마취과 의사 -수술에 앞서 사람들을 잠들게 한다. 보통은 약물을 사용하지만 때로는 최면을 걸기도 한다. 응급실에서는 중심혈관에 주사를 놓고, 호흡이 곤란한 환자들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기도에 기관튜브를 삽관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아주 유용한 존재이다. 갈수록 많은 응급실 의사들이 이러한 의술을 익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응급실에서 마취가 의사들을 호출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전문분야, 즉 지역 치료센터에서 숫자 퍼즐이나 낱말 맞추기와 같은 놀이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ㅏㄷ.

 

신장전문의 - 콩팥이 손상된 환자들을 돌본다. 매우 총명하지만 다소 굼뜬 면이 있다. 이들은 사구체신염과 cANCA 같은 말을 이해하고 있다.

 

노인병전문의 -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NHS의 영웅들이다.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도 실용적인 방식(각각의 징후와 증상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환자 자체를 치료하는)으로 일을 진행한다. 때때로 누가 의사이고, 누가 환자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암전문의 - 세상에 널리 알려진 NHS의 영웅등. 그만하면 일을 잘하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 - 응급실에서 급하게 피부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의뢰할 수 있다면, 그 병원은 바로 규모가 큰 의과 대학 부속병원이다. 이들은 발진을 살피고 거기에 번지르르한 라틴이름을 갖다 붙인 뒤 스테로이드제를 처방한다.

 

안과 전문의 - 눈 전문가. 이들의 호출 진료 서비스를 자동 응답 메시지로 바꿔 보면 다음과 같다. " 1번을 누르신 화자분, 클로람페니콜 연고를 드립니다 아침에 진료하겠습니다. 2번을 누르신 환자분, 클로람페니콜을 드릴테니 이틀 후에 오세요" 등등

 

 

ACLS C circulation  

 

'경환자'라는 명칭은 그다지 적절하지 못하다. 환자가 겪는 질환이 설령가벼운 것일지라도 그 환자의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환자' 라는 말은 환자의 품격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다행히도, 도입부에 이 일들은 스턴트 배우가 하는 것으로 어린이가 따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먹힐까? 그런 말로 애들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은 애들이 '난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따라하지 않을 거야. 친구하고 구슬치기나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삼년전, 나는 어린 아이들이 'JackAss'라고 소리치며, 나무에서 줄줄이 뛰어내리다 다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덤불을 통과해 땅에 떨어진 후,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왔다. 그런 다음. 영화에 출연하는 것처럼 CT 촬영을 했다.

 

정부는 환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려 한다. 나는 의사의 선택권을 늘렸으면 좋겠다. 어떤 환자부터 진찰해야 할 지를 우리가 선택하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 진료 순서를 결정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의사들에게 "저는 언제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 받게 되나요,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묻지 마라.

 

내가 하는 의료 행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즉시 내게 말하라. 나는 경찰관도 아니고, 교도관도 아니다. 당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당신을 병원에 묶어놓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퇴원하려거든 내가 값비싼 검사와, 침대를 배치하기 전에 말하는 것이 좋겠다.

 

퇴원이든 입원이든 4시간 내 치료를 할 수 있는 건강상태를 갖춰라. 시간을 잡아먹는 검사가 필요한 복잡한 문제로 찾아오진 마라. 당신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 4기간 규칙을 깰 수 없으므로.

 

우리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점에 유의하시길...우린 방금 한 아이가 죽어가는 걸 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친척에게 나쁜 소식을 알렸을 수도 있다. 연속해서 엿새째 야근을 했을 수도 있고, 게다가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인내심을 발후하여, 예의를 지키고 다정하게 대해주시길..그리고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고 너무 불평하지 말아주시길..

 

정부는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뚜렷한 목표를 원한다. 따라서 진료의 질과 같은 추상적 목표보다는 일의 우선 순위를 왜곡시키면서까지 응급실의 대기시간을 4시간 이내로 설정했던 것이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는 유권자보다 부러진 발톱을 진료받기 위해 기다리는 유권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그 편이 더 의미있을 것이다.

 

난 왜 퇴근 후에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어야하는 걸까? 게다가 왜 나의 생각은 결국 분노와 고함으로 이어지고, 보통은 정치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일까?

 

도덕을 설교하는 게 우리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그렇게 되고 만다. 그러나 의사는 직업적 특성상 환자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ACLS D defbrillation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다양한 증상과 희귀병들을 검색해 볼 수도 있고, 때로는 의대에서 배운 후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질병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내기도 한다. 종종 우리는 " 일 분만 기다리세요" 라고 말한 후, 인터넷에서 최신 치료법을 검색한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 중의 하나가 Best-Bets 사이트다. 이 사이트는 다양한 증상에 대한 최선의 치료법이 무엇인지 근거가 될 수 있는 증례들을 샅샅이 보여준다.

 

사람들은 대부분 몇 가지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난 사람은 이런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 살면서 마주치기 싫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의사로서 나는 함부로 사람을 속단할 수 없으며, 누가 됐든 제대로 치료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적절한 진료를 제공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객관성을 견지한다는 것이 때로는 이 직업의 가장 힘든,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이다.

 

요즘은 환자의 선택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이 계획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았다. 불행히도, 소송과 불평편지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많은 의사들이 가끔은 환자의 압력에 못 이겨 불필요한 검사를 하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 나는 이틀간 집중 교육 과정에 참여했다. 엄청난 강의 였다. 주제도 광범위했거니와 무엇보다도 식사와 숙박비 모두 무료였다. 그렇다. 나는 엄마집에 갔었다. 엄마는 의학에 대해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응급조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엄마는 아직도 나보다 건강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하며, 충고하려 든다.

 

 

ACLS E expose and examine

 

자문의 - 다년간 의료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의료 현장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며 환자들에게 탁월한 치료를 제공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가끔 집무실에서 고객 항의에 답하거나, 회의에 나가 4시간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임상전문의- 자문의 바로 아래이자, 수련의보다는 경험많은 의사들. 나를 포함하나 우리 임상전문의들은 질문을 받으면, 안경을 벗어든 채 마치 지적이고 아는 것이 많은 것처럼 온갖 똥포믕ㄹ 잡으며 뜸을 들이는데 사실은 생각할 시간을 벌고 있는 짓이다.

 

수련의 - 응급실에서 일하는 하급 의사들. 물론 일부 탁월한 수련의도 있다. 모두 열심이 일한다. 다시 말해 지독한 당번제에 따라 열심히 일하도록 강요당한다. 덕분에 그들보다 고참인 전문의들이 그나마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기간을 고작 넉달에서 여섯 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료 인력 배치 담당자는 그렇게 심한 불평도 듣지 않으면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 간호사는 이렇게 많은데, 정작 씻기고, 관찰하는 등등 단순한 간호와 궂은 일을 담당하는 수련간호사와 조무 간호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은 제대로 된 보수도 받지 못한 채 일을 제대로 할 시간마저 없을 정도로 혹사당한다. 

 

우리는 본래의 간호 업무를 담당할 간호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전문간호사들을 잘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간호 그 자체를 목적으로 고용된 간호사들이 더 많아야 하고, 수간호사든, 수련간호사든, 급여를 올려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계속해서 NHS를 떠나거나 관리직으로 이직할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들의 숙련된 기량이 절실히 필요하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병원이 다소 불공평하게 보일 수도 있다.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한다면, 보통은 남보다 먼저 진료 받지 못한다. 그러나 소동을 부린다면, 때로는 빨리 진료 받기도 한다. 오늘 난 환자가 바닥에 오줌을 싸면 곧바로 진찰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응급실에는  '단골손님'이 있다. 대개 노숙자나 주정뱅이, 또는 약물 중독자이다. 이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는 이유는 생활 방식 자체가 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1차 진료 기관에 접근하는 방식을 모르거나 아니면 아예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일부 직원은 이 환자들과  꽤 가까워지기도 하는데, 자칫하면 위험한 관계로 이어진다. 숙식이 필요할 때마다 다른 적절한 통로를 찾는 대신 응급실로 오기 때문이다. 

 

 

ACLS F fundus, family, fluids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기대 이하의 진료를 하기도 하며, 그때의 불평은 정단하다. 그러나 불평은 노력하여 줄일 수 있으며, 대부분은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가장 당혹스러운 불평은 그저 금전적인 보상을 받으려는 욕심에서 나온, 이치에 맞지 않는 불평이다. 

 

의사가 불평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의사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도 있고, 행여 지방신문에 이름이라도 나면 모든 사람들에게 나쁜 의사로 매도 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자책을 불러 일으키고 이력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어떤 법적인 소송은 정말 터무니 없는 내용이지만, 병원에서는 그냥 다 보상해주기도 한다. 재판에서 이기지 못하면 수임료를 받지 않겠다는 법률회사와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보상비용이 더 싸기 때문이다.

 

나의 성실함에 이의가 제기되었고, 내가 특별히 자신했던 환자에 대한 배려 역시 의심 받았다. ...그저 그녀를 돕고자 한 일인데, 더 많은 편지와 더 많은 조사를 받을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다....나는 불펴의 범위가 너무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의사가 하는 모든 충고가 불평으로 이어지다면 의사는 자신을 곤란에 빠뜨리는 충고를 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지도 않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이기지 않으면 수임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계속 된다면, NHS 는 보상액을 지불하느라 파산할 뿐만 아니라 의사가 방어진료를 하게 됨에 따라 (즉 환자를 진단할 때, 환자가 불평하지 못하도록 가능한 모든 검사를 다 한다) 검사 비용 때문에도 파산하게 될 것이다. ' 의사가 제일 잘안다'라는 속설이 사라지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진료를 결정할 때마다. 소송의 두려움을 과도하게 걱정하게 된다면, 의사와 간호사가 직장을 떠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심장이 다시 뛰도록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이 경우, 다음 세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지금까지 그의 삶의 질은 어떠했즌가? 둘째 심장 마비 및 이어지는 처치를 견뎌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셋째, 환자 또는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길 원하는가?

 

응급실에서 3시간 59분이나 진료를 기다리다 절망감을 느낀적이 있는가? 지난 몇 년동안 나는 어떻게 하면 빨리 진찰 받을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을 주시했다. .....략....1. 진짜 위급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의 심장을 멈추는 것이다. 구급차 기사가 우리에게 전화해서 지금 가고 있는데 즉각 진료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낮시간이라면, 자문의에게 진료받을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이 불평편지에 답하거나, 양식을 채우거나, 또는 '환자중심치료: 잠정토론' 같은 모임에 참석하는 등. 경영진이 환자 치료보다 더 급하다고 간주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경우라면. ........략 .............7. 응급실 의사가 치료할 수 있고 굳이 전문의에게 가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갖춰라.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힘들겠지만, 전문의까지 만나기 위해 두번이나 기다리는 것은 두배나 더 힘들다. ..........략........13. 결코 실패하지 않을 최고의 방법은 간단하다. 정치가나 병원의 중요한 경영자가 되라. 즉시 진료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문의까지 만나게 될 것이다. 진료도 금방받고,  검사도 금방 받으며 필요하다면 전문의를 만나는 일까지 즉각 이뤄진다. 정치가난 경영자들이 응급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 모른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ACLS  G go quickly! golden hour, glucose

 

진지하게 말하거니와 누군가에세 한방 먹였으면서 벽을 쳤다고 말하지 마라. 상황은 명백하며, 우리는 세세한 상황들을 다 알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을 쳤다고 말하려거든 조심하라. 의사의 조롱과 마주하게 될 것이므로.

예를 들면 의사의 말 :벽이 손을 깨물었습니까?   의사의 생각 :항생제가 필요한지 아닌지 알아야 하니까 진실을 말해   

의사의 말 :조금 아플 거에요.  의사의 생각 :그냥 국소마취만 해서 꿰매야 뭔가 배우는 게 있겠지.

의사의 말:3시간 더 기다리시면 진료해드리겠습니다.   의사의 생각 :제발 그냥가라

의사의 말:저는 화가나면 속으로 10까지 세곤 합니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그런 방법을 써볼 생각은 없나요?    의사의 생각 :우리 병원에 아주 힘센 경찰관이 두명 있거든. 한번 덤벼봐. 당장 체포될걸

 

그들은 시간낭비에다, 불필요하게 환자를 방사능에 노출시킨다며 촬영을 하지 않으려 했다. 만약 내가 틀리면 성을 갈겠다고 말한 후에야 겨우 촬영에 동의 했다. ....그가 촬영하는 동안 내 모든 동료들은 '불필요한' 검사를 시켜서 내 하루를 흥분시킬 드라마틱한 일을 찾고 있다며 나를 놀려 댔다.

 

분명 종양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뇌가 부은 상태여서 당장 전문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 였지만 이상하게도 학문적인 면에서는 기뻤다. 불가사이한 증상과 징후만 보고 제대로 진단을 내렸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러나 그건 결국 그 환자가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뇌종야에 걸렸다는 사실을 내가 기뻐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확실히 옳지 않다. 학문적 만족감이 사그라 들고, 대신 가슴 아픈 현실이 다가왔다. 환자는 뇌종양이었고, 오늘밤 급히 수술해야 하낟. 그리고 앞으로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낟.

 

불가사의한 감정이 교차한 하루였다. 학문적인 관점에서는 기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이 직업은 참으로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혼란스럽다.

 

이 일을 좀 더 편하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 환자가 다양한 병을 앓기 원한다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진정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진료하는 모든 환자가 고통과 질병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일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다. 단지 내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감정을 품든, 최선을 다해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그런 혼란스런 생각을 환자에게 드러내지 말며,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나의 일상이 '날이 바뀌어도 늘 같은 똥'일 수도 있지만, 똑같은 똥은 없으며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덕분에 나는 늘 환자와 일에 대한 흥미를 유지한다. 스트레스도 많지만 시간이 휙지나 어느덧 근무가 끝날 시간이 되면, 보통은 뭔가 유익한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든다.

 

내경우에는 일터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이 증후군을 촉발시켰다. 이를테면, 

1. 4시간 법칙 -나에게 적용하지 마라.   

2. 자주 무례하게 구는 환자   

3. 차브나이트클럽(챠브chav는 미국 힙합 문화의 영향을 받아 가짜 금으로 만든 장신구와 유명브랜드의 짝퉁을 걸치고 다니는 영국 노동계층의 젊은이들). 차브들이 가서 싸우다가 나한테 온다. 주의하라. 나는 클럽에 가면 사람들에게 그것이 세련된 복고풍이고 차브스럽지 않다고한다.  

4. 과도한 기대를 하는 상류층   

5.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6. 자살하려 하지만 거의 불가능한 방법을 쓰는 사람 - 5알의 비타민으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겠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당신을 밤새 병상에 잡아두어야 한다. 정신과 의사와 면담하려면 아침이 되어야 하므로.   

 7. 의대교수,. 그들은 불만이 많은데다 오만하면서도 일부러 공손한 척한다. 우리 기록을 복사하고, 불필요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평하면서 이렇게 말하낟. "나라면 이런 건 의뢰하지 않았을 텐데." 그럼 그들을 집으로 보내시지요 교수님.   

 8. 거들먹 거리며 이렇게 말한는 심장병 전문의 - "자기만족을 위해 괜한 법석을 떠는 것 같군요."   

9. 모든 질문에 클로람페니콜이라고 대답하는 안과의사.  

10. 항상 결핵은 제외됐는지를 못는 호흡기 전문의. 그 검사는 수주일이나 걸린다. 나는 단지 4시간 밖에 없는데.    

 11. 시간 외 담당주치의 - 나를 펄쩍 뛰게 하지 마라.  

12. NHS 다이렉트 - 자체 역량의 한계로 인해 사람들에게 응급실로 가라고 충고할 수밖에 없다.   

13. 기껏 응급실에 와서 '단지 의견을 듣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14. 술취한 10대들 - 어렸을 때 나는 술에서 깨기 위해 응급실이 아니라 집으로 갔다.

 

 

나의 마지막 생각

 

이 책을 쓰면서 나 스스로 크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습관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실제로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가는 동안, 내 일과 오늘 하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장마비에서부터 손가락 골절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케이스를 많이 진료했다. 의사로서 정말 난감할 정도록 상태가 나빴지만 결과가 좋아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든 환자도 있었다. 한 의대생으로부터 2주전에 했던 강의에 대한 감사의 이메일을 받았고, 내가 진료한 환자에 대해 병원장으로 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햇다. 간호사난 80명이 넘는 환자들과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하우 였다.. ....략.....이런 좋은 날에는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운 나쁜 날에는 상황이 다르다. 지극히 가슴 아픈 케이스를 다뤄야 할 때면 밀려드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다.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과 나의 치료가 헛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환자로부터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빼놓을 수 없다.  병원 경영진으로부터 부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한다는 나쁜 평판을 얻게 될까 두렵고, 동료 전문의들이 환자를 적절히 치료하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녀석으로 생각할까봐 걱정된다. 거기다 다양한 시험과 의사면서 갱신, 그리고 꼭대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줄곧 최고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현실까지 더해지면, 응급실 의사란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누군가 이 일을 계속 하겠는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yes"이다. 잘하면 몇년 뒤에는 자문의가 될것이다.  그것은 책임과 요구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단지 변화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방식으로 그 변화를 주도 할 힘과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적으로 강건해서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나 혼난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여러가지 비난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야 한다. 또한 boucebackability, 역전능력, 즉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 이 있어야 하고,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불평이나 경영진과의 불화, 자신이 선택한 커리어의 불확실성 같은 문제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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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2. 30. 11:53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몸과 마음이 늘어진 엿가락처럼 긴장이 풀려버렸던...
심지어 내과 주치의 한명이 도망갔었는데도, 여긴 왜이리 여유로운 거야.. 자꾸 고개를 갸웃거렸던 일정.

심한 세달을 보내고, 어느정도 개념 장착하고 자신감 가지고 돌았던  스케쥴..
같은 병동을 나눠맡은 주치의도 일을 시원시원스럽게 하는 성격이고,
무엇보다 일거수 일투족 토달던 소아과 교수님들과 발가락 꼼지락 하는 것도 컨펌해주어야 했던 소아과 간호사들 과는 너무도 다른!
내과 교수님 내과 간호사들과 일하니 하루가 정말 홀가분해졌다.

수고하는 소아과 간호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의사와 간호사와의 호흡은 응급실,중환자실 > 외과 >>>>넘사벽> 내과>>>>>넘사벽*3 >>소아과 -.-;; 이런듯하다.

어쨌거나 캐묻는 보호자, 볶아치는 교수님, 들들 볶는 간호사 가 없는 대신..
늙은 환자들이 내게 왔다. ;;

처음 며칠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쏙 빠졌었다. 당췌 누굴보고 웃어야 할지 -.-;;
며칠이 지나고 친절한 의사를 가장한 미소를 다시 덮어쓰긴 했지만 ..후후

pericarditis로 지방에서 응급실을 전전하다 여기 응급실서 며칠 깔리고 겨우겨우 입원하니 다 회복해서 다음날 퇴원해버린 젊은남자환자가 생각난다.
며칠동안 자기가 살면서 만나봤던 의사숫자보다 더 많은 의사들을 만났는데 자기를 보고 웃어준 의사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내가 많이 배우고 간다고.. 가식인 날도 있고, 허망한 웃음인 날도 있지만..
어쨌거나 환자앞에선 밝고 의연해 지자고 결심했다.

심장의 문제들은 한방이라는 게 있어서, 잘 해결이 나고 나면 즐겁게 안녕할 수 있는데,
heart failure.. 특히나 고령의 heart failure는 참...
찌글찌글 하다. ..그들의 차트 처럼...그들의 삶처럼..
좋지 않은 마음으로 안녕했던 환자들은 병세가 심해서라기보다.
그 밖의 문제들이 심난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 정도의 여유와 환자들과의 거리감이라면 좀 살만하겠다 싶은 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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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2. 30. 11:40

4월이 너무 고되어서였을까
다들 힘들어 한다는 스케줄이었지만 그닥저닥 잘 버텨내었다. 
수많은 지도 쪽지!에 지치기도 했지만 소아과를 지나고 나니 차팅에 자신감도 생기고..
그리고, 우선 웃을 일이 많다.
국내 몇 case 이런 식으로 드물고 심한병으로 입원하였음에도..
어린아이들은..
웃음을 준다. 
그 웃음끝에 그 아이들의 운명이 너무 슬퍼서 입술을 꽉 깨문적도 많았지만, 
병동에서 아무 생각없이 가장 많이 웃었던 때가 소아과 주치의를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열흘 안팎의 당직은...
아..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다.
밤을 새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당직실이 아닌 처치실에서 쪽잠을 잔게 대부분이었다.
일이 느리고 걱정이 많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내공 역시 분명히 험했다. 

소아과 특유의 형식과 순서를 중시하는 분위기, 했던 일을 세번네번 확인받는 짜증스러움에 뒤로가서는 꽤나 지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어쨌거나 아주 아프지만 않는 날이면, 행복하게 지냈다. 
이곳이 병원이라는 사실도 잊은채로..
그 아이들 옆의 어머니들도 현실감을 잊은채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병동에서 잘 보내었다. 

절대 아프면, 절대 후유증이 남으면, 절대 죽으면..안돼...

그 마음이 나를 너무 괴롭혀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떠나올때는 못내 아쉬웠던.. 

소아과 주치의들은 내환자라고 안그러고, 내 애기..이런다. 
너네 환자 안그러고 니 애기.. 이런다..
뭐 , 그냥 그렇게 된다. 

소아과 주치의를 맡고 난 후 아이 울음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는 소리 등에 매우 관대해 졌다. 공공장소에서 민폐끼치는 아이를 보면 엄마는 말리지도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들은 원래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심도깊은 insight 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후후
사실, 내 애기..아니 내 환아가 복도를 다다다 뛰어다니면 남몰래 뿌듯했었다. 짜식.. 오늘은 건강한데.. 이런 심정.. 

아픈 아이들은 조용하다. 
관심이 없다. 
칭얼거리는 것도 기운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한다. 
아이가 힘있게 울때, 웃을때.. 뛰어다닐때..
행복했었다. 
아이가 반응이 없을때, 나쁜 경과를 차곡차곡 밟아 갈때, 넌 아직 어린데..라는 억울함에...
화가 나고, 무기력한 내 모습에 이대로 내가 꺼져버렸으면 싶을때도 있었다.
아이에게 중환이라는 점차적으로 나빠지고야 말거라는 진단을 내릴때는 이 모든 일이 내 책임같아, 아이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소아과는 아이가 +100, 아이엄마 및 보호자 -50, 소아과 의사 및 간호사 -49해서 간신히 +1점 정도인것 같다. 
난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아과를 할 용기!!가 생기나 보다. 
 
소아과를 떠나면서 어른 사람을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는데, 동인까지 다녀온 지금..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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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1. 22. 12:05

3월 31일 12시까지 내과 환자들 정리하고, 4월 1일 외과로 넘어갔다.
정신이 없었다. 정말 하루 종일 너무 너무 정신이 없었다.
 낯선 수술명, 환자들, 무슨 수술을 한건지 뭘 해줘야 할지, 새로운 용어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자들..
지금쯤이면 그리 힘들지 않았을것 같은데..
그날 하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속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달마다 익숙해질  낯설음과 막막함을 가장 외롭게 느꼈었다.
첫날부터 회식이라니.. 첫날 오더도 덜냈는데, 자꾸 나가자는 2년차 선생님앞에서 한숨을 쉬면서 마우스를 내팽게쳤다. 그사람들이랑은 요즘도 어색하다. 허허..
그주 주말이 지나고나서야 정신이 좀 들고, 외과 사람들도 싹 바뀌고..
인턴때 짱돌로 소문났던 사람이 치프였다. 3년이라는 세월은 어쨌거나 사람을 바꿔놓는것인지.
치프다웠다.
그 후의 시간들은 익힌 일을 또하고 또하고 또하는 시간들이었다.
극단적인 수면시간, 극단적인 금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회식까지..
4월 한달이 지나고나서 결정타를 맞은 체력은 여름휴가때까지 나를 골골거리게 만들었던 듯 싶다. 그래도 그 한달도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줬었다.
오히려 외과적인 것보다 내과적인 것들을..그리고.. 사람들에게 특히나 암 초진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수술후 병기판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의사의 위로와 설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의 암이 깨끗이 제거되었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전엔 무슨말로도 웃게도 울게도 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이 말이다. 나름 철든 30대라고 믿었는데..
내가 얼마나 매정하고 지적인 내용으로만 환자를 대해왔었는지...
내 부족함이 나를 가르쳤다.
잊을 수 없는 제주도 할아버지...
이제 상처만 붙으면 퇴원이라고 하는 그순간 AHF, intractable A. fib..
할아버지가 나빠진 새벽 3시부터, 결국 처치실에서 이약 저약 쓰다가 MICU 전동간 저녁무렵까지.. 그런 생지옥은 다시는 잊을 수 없을 거다.
애써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믿는 할머니, 망연해진 자녀들,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던 할아버지..
암센터에서 본관으로 할아버지 침대를 끌고 넘어가면서 화사하게 피어있는 벗꽃을 보면서 눈물을 참으려고 얼마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른다.
정작 그때쯤엔 HR 도 거의다 잡혔었는데..
어쨌거나 할아버지가 퇴원하면서 내게 고마워해준 그게 너무 고마웠다.
내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일단의 크론 환자들..
젊은나이, 활짝 인생을 만개시켜야 할 나이에 반복되는 입원과 수술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사람들. 병원을 그렇게 들락거리면서도 오히려 굳어진 그들만의 고집으로 몸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는 답답함.
크론으로 갑갑한 그 와중에 UC 가 와서 별스럽지 않게 여겼는데 환자에겐 그게 아니었나 보다.
도대체 말을 드럽게도 듣지 않아 이제 멱살잡이까지 할 지경에 이르른 환자와 어느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병의 예후를 듣고 나서 이게 죽을병이 아니란 말을 듣고 나서 그 환자는 극적으로 개심했다. 그냥.. 불안한 거였는데.. ileostomy는 3개월 후 제자리를 찾을 거란 말에 환자는 그 나이많은 남자는 눈빛가득 감동의 눈물까지 보였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무작정 희망을 얘기할 수도 혹시 있을지 모를 절망을 숨기지 않는 것이 이들에게 절망이 되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외과의사들의 무심함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무심하기에 차트만 쓰고 있어도 한숨밖에 안나오는 중환을 보고도 웃으며  수술장을 열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단 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능력도 걱정도 없는 무식하고 무심한 의사는 특히 그런 외과의사는..참기가 힘들다.

마취과 스텝이랑 수술방 문제로 싸운날, 수술장으로 들어와 사과를 하라는 스텝의 요구를 들어주러 수술장으로 향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게 생각난다. 그날 2년차 선생님의 중재로 대면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날 사과를 해야만 했었다면 정말 큰 상처였을 거다.

임신중 장중첩으로 장절제술을 하고 암진단까지 받았던 산모, 이미 임파절전이까지 손쓸 수 없이 퍼졌지만 어쩌면 VVIP이기에 아무도 예후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던 변호사 아저씨, 결국은 얼굴 붉히며 퇴원시켰던 엄살 심했던 동갑내기 환자. 제주도에서 복부를 open 한채 후송되어왔던 젊은 남자 환자..hemorroid로 Hb가 5점대까지 떨어졌던 아저씨 등등..
극적인 상황에서 만나서 안녕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퇴원시켰던 사람들..

다음달이면 upper GI다..
그때보다는 덜 두렵다. 무엇보다 일단 내가 무엇을 할지 알고있고, 내과적 지식이 어느정도는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조금은..아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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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1. 22. 11:32
첫 출근부터 일이 꼬였다. 난 수액처방 하나 낼 줄 모르는데, 간만에 쓰는 입원기록이 낯설기만한데..
아침 회진을 돌고나니 할일이 없었다. 병동을 어슬렁 거리자니 쑥쑥했다. 
내과 주치의는 일에 치여 거의 넋이나간 모습이었다. 
오후 신환이 별로 없단다. 
그래서 그냥 다 나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굳이 내과 주치의 이름으로 된 환자까지 다 넘겨줬다. 그게.. 시작이었다. 약속처방으로 해결이 나지 않을 중환..
DKA  ?NKHSS? 뭐 어쨌거나 고혈당으로 엉망진창이 된 사람을 맞이해 셀프 당직..
편하게 넘어간다는 내분비 내과 였는데, 아직 일이 익숙치 않아 삽질도 많이 했고, 바닥이 친 지식을 다시 채우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또 과다의욕으로 환자들도 열심히 보기도 했고. 하하..
어쨌거나 힘들게 본 만큼 당뇨환자는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걸로 됐다. 
쿠싱도 꽤나 봤다. 뇌하수체 종양도 꽤나 봤고 생각보다 심한 말단비대증도 봤고, 심지어 내환자는 아니었지만 papillary adeno ca로 죽는 사람도 봤고, hypothyroidsm으로 seizure 하는 사람도 봤다.  

첫환자였던 pancreatecomy한 alcolism DM 아저씨도 생각나고, DM, hypothyroidsm, osteoporosis 등 여러가지 내분비질환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치매가 와서 본인약도 밥도 못챙겨먹던 할머니도 생각난다. type 1 DM인데 인슐린 안쓰고 DKA 로 왔던 20살 여자아이도, type 1DM  초진으로 왔던 간호사도, 사실 HNP인데 neuropathy로 알고 내분비로 입원했던 성격 말도 못하게 까탈스럽던 할머니도 생각난다.

이병원쯤에 당뇨 등으로 입원하려면 어느정도는 경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때만 해도 말안듣는게 미웠지 돈없어서 치료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그때 속끓이면서 눈물 짰던것 생각하면 내가 아직 험한꼴을 아주 덜 봤었구나 싶다.

어쨌거나 내과로 시작했던 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중환을 봤던 것도, 당직을 섰던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 7시마다 있었던 김광원 교수님의 회진도 좋았다.
내분비 전반에 대한 조언들도 참으로 대가 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아침 회진시간에 내눈 가득히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던 그말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왜 사람은 죽으면 안되냐는.."
지금은 무슨 말 때문에 그렇게 눈물이 났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참 내 맘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던 질문의 정곡을 찔린듯했다.
언젠가 죽을 사람들을 위해, 이들을 살려줄수없는 내가 무엇을 할까.
무슨 맘으로 이들을 직면할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마지막날까지 참 정신없이 돌아갔지만,
처음 시작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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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일기 2011. 3. 7. 00:00
cocktail test환자에서 허를 찔리는 질문을 받을 줄이야..
환자파악을 입밖으로 줄줄 논리적으로 읊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나요?"를 후렴구처럼 되뇌이시는 김교수님의 질문은 항상 도인의 그것처럼 뜬금없다.
요약집엔 없을 듯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그 사람의 머릿속엔 있는 걸까?
선문답이 되어 끝나는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시간이 없는 주치의의 사정은 언제나
그렇지 않나요의 그렇지 부분에 대한 이해를 떨어뜨려 놓을 뿐..

FM의 외로움은 흩어짐에 원인이 있다.
잠시 잠깐 만나고 다시 각자의 이웃집으로 헤어지는 우리의 모습..
입국하고 코빼기 만큼도 볼수없는 몇몇 동료들..

어쨌거나 환자들은 쭉쭉 잘 들어오고 잘 나간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
웃으며 다가서지만 속은 알 수없는 환자들..
도대체 당신들은 뭘 먹고, 뭘하다 이런 몸이 되어와서는 힌트도 주지 않고 답을 맞추라는 걸까..

IDDM이 의심되는 20대 후반 이OO씨..
DKA로 ICU까지 갔다가 전원온 이 사람은..의외로 담담했다.
뭔가 화가난 듯한 이 사람의 아버진.. 딸의 진단을 듣고 뭔가 단단히 화가난 듯하고, 그 화를 풀 대상을 찾는 듯해서 조금은 조심스럽다.

아무리 화를 내어본들..원인불명의 질환의 원인을 내 입으로 들을 수 있진 않을텐데..
대구 사람..
보수적이고 스티그마가 남에게든 자신에게든 심한 지역색..
출산도 결혼도 가능한 이 질환에 벌써 자기 딸에게 독신과 불임의 스티그마를 붙여놓은 듯해서
병보다 더 무거울 가족들의 무게가 내게도 느껴졌다.
내가 그 지역 출신이라 더 민감해 진건가..
암튼...
내일은 조금 더 피곤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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