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011. 11. 22. 11:32
첫 출근부터 일이 꼬였다. 난 수액처방 하나 낼 줄 모르는데, 간만에 쓰는 입원기록이 낯설기만한데..
아침 회진을 돌고나니 할일이 없었다. 병동을 어슬렁 거리자니 쑥쑥했다. 
내과 주치의는 일에 치여 거의 넋이나간 모습이었다. 
오후 신환이 별로 없단다. 
그래서 그냥 다 나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굳이 내과 주치의 이름으로 된 환자까지 다 넘겨줬다. 그게.. 시작이었다. 약속처방으로 해결이 나지 않을 중환..
DKA  ?NKHSS? 뭐 어쨌거나 고혈당으로 엉망진창이 된 사람을 맞이해 셀프 당직..
편하게 넘어간다는 내분비 내과 였는데, 아직 일이 익숙치 않아 삽질도 많이 했고, 바닥이 친 지식을 다시 채우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또 과다의욕으로 환자들도 열심히 보기도 했고. 하하..
어쨌거나 힘들게 본 만큼 당뇨환자는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걸로 됐다. 
쿠싱도 꽤나 봤다. 뇌하수체 종양도 꽤나 봤고 생각보다 심한 말단비대증도 봤고, 심지어 내환자는 아니었지만 papillary adeno ca로 죽는 사람도 봤고, hypothyroidsm으로 seizure 하는 사람도 봤다.  

첫환자였던 pancreatecomy한 alcolism DM 아저씨도 생각나고, DM, hypothyroidsm, osteoporosis 등 여러가지 내분비질환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치매가 와서 본인약도 밥도 못챙겨먹던 할머니도 생각난다. type 1 DM인데 인슐린 안쓰고 DKA 로 왔던 20살 여자아이도, type 1DM  초진으로 왔던 간호사도, 사실 HNP인데 neuropathy로 알고 내분비로 입원했던 성격 말도 못하게 까탈스럽던 할머니도 생각난다.

이병원쯤에 당뇨 등으로 입원하려면 어느정도는 경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때만 해도 말안듣는게 미웠지 돈없어서 치료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그때 속끓이면서 눈물 짰던것 생각하면 내가 아직 험한꼴을 아주 덜 봤었구나 싶다.

어쨌거나 내과로 시작했던 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중환을 봤던 것도, 당직을 섰던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 7시마다 있었던 김광원 교수님의 회진도 좋았다.
내분비 전반에 대한 조언들도 참으로 대가 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아침 회진시간에 내눈 가득히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던 그말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왜 사람은 죽으면 안되냐는.."
지금은 무슨 말 때문에 그렇게 눈물이 났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참 내 맘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던 질문의 정곡을 찔린듯했다.
언젠가 죽을 사람들을 위해, 이들을 살려줄수없는 내가 무엇을 할까.
무슨 맘으로 이들을 직면할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마지막날까지 참 정신없이 돌아갔지만,
처음 시작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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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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