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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23 :: 8월 가정의학과 의국
  2. 2011.12.30 :: 7월 순환기 내과
  3. 2011.12.30 :: 5월, 6월 소아청소년과
  4. 2011.11.22 :: 4월 하부대장 외과
  5. 2011.11.22 :: 3월 내분비 대사 내과
기록 2012. 4. 23. 12:53

7월에 이어 8월 역시 떨어진 체력이 바닥에서 헤메인 달이었다.

일정자체가 바빴다면 어떻게든 이를 악물었겠지만, 늘어지려면 늘어질 수 있는 일정이라 정신줄이고 일줄이고 더 많이 놓고 다니지 않았나 싶다

 

1년차 의국은 로딩이 크지 않고, 같이 의국이었던 선배들도 워낙 배려많은 성격이라 오히려 챙겨줘서 불편할 정도였다.

좀 빠릿하게 하면 내 편에서 더 잘 챙길 수 있는 것도 선배들 손을 많이 빌려서 나도 결국 누울 자리 보고 발뻗는 인간인가 조금 반성도 했더랬다.

 

오랫만에 공부할 시간이 많은 일정이라, 지식을 알차게 쌓으리라는 결심과는 무관하게 몇개의 발표마저도 참 허접스럽게 해서 의기소침이 많이 되었다.

오랫만에 해서 그래..라는 핑계는 예전에도 잘 했던 사람이나 할 수 있을 것 같고-.-;;

워낙도 자료 정리도 발표도 참 못했는데, 그걸 또 닥쳐서 하다 보니 더더욱 부실한 발표여서 모두를 실망시킨 한달이지 않았나 싶다.

 

중간에 휴가가 있었고, 시댁 및 친정 세심?하게 배분해서 휴가를 보냈으나 어디서든 내가 한건 한가지 였다. sleep..sleep..sleep..

사실 시댁에서는 그럴 생각 없었는데 도저히 내려와서 올라올때까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간의 피로와 긴장이 풀리면서 눈을 뜨고 제대로 사회적인 행동이나 말을 할 기운이 없었다.

내가 의사인 것을 좋아하는 시댁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아서 보면 니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길래, 시댁을 우습게 보고 등등 .. 속 터지는 비아냥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들 어디 가서도 잘자리만 찾는 나를 잘 이해해 줬다.

세세한 내막을 몰라도 이해의 액션을 취해주는 것, 그게 고맙다.

 

의국은 앞으로도 많이 있으니까, 다음엔 잘해야지 다음엔 잘해야지 그 생각을 제일 많이 했었다,

그만큼 몇안되는 일도 참 못나게 했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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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2. 30. 11:53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몸과 마음이 늘어진 엿가락처럼 긴장이 풀려버렸던...
심지어 내과 주치의 한명이 도망갔었는데도, 여긴 왜이리 여유로운 거야.. 자꾸 고개를 갸웃거렸던 일정.

심한 세달을 보내고, 어느정도 개념 장착하고 자신감 가지고 돌았던  스케쥴..
같은 병동을 나눠맡은 주치의도 일을 시원시원스럽게 하는 성격이고,
무엇보다 일거수 일투족 토달던 소아과 교수님들과 발가락 꼼지락 하는 것도 컨펌해주어야 했던 소아과 간호사들 과는 너무도 다른!
내과 교수님 내과 간호사들과 일하니 하루가 정말 홀가분해졌다.

수고하는 소아과 간호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의사와 간호사와의 호흡은 응급실,중환자실 > 외과 >>>>넘사벽> 내과>>>>>넘사벽*3 >>소아과 -.-;; 이런듯하다.

어쨌거나 캐묻는 보호자, 볶아치는 교수님, 들들 볶는 간호사 가 없는 대신..
늙은 환자들이 내게 왔다. ;;

처음 며칠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쏙 빠졌었다. 당췌 누굴보고 웃어야 할지 -.-;;
며칠이 지나고 친절한 의사를 가장한 미소를 다시 덮어쓰긴 했지만 ..후후

pericarditis로 지방에서 응급실을 전전하다 여기 응급실서 며칠 깔리고 겨우겨우 입원하니 다 회복해서 다음날 퇴원해버린 젊은남자환자가 생각난다.
며칠동안 자기가 살면서 만나봤던 의사숫자보다 더 많은 의사들을 만났는데 자기를 보고 웃어준 의사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내가 많이 배우고 간다고.. 가식인 날도 있고, 허망한 웃음인 날도 있지만..
어쨌거나 환자앞에선 밝고 의연해 지자고 결심했다.

심장의 문제들은 한방이라는 게 있어서, 잘 해결이 나고 나면 즐겁게 안녕할 수 있는데,
heart failure.. 특히나 고령의 heart failure는 참...
찌글찌글 하다. ..그들의 차트 처럼...그들의 삶처럼..
좋지 않은 마음으로 안녕했던 환자들은 병세가 심해서라기보다.
그 밖의 문제들이 심난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 정도의 여유와 환자들과의 거리감이라면 좀 살만하겠다 싶은 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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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2. 30. 11:40

4월이 너무 고되어서였을까
다들 힘들어 한다는 스케줄이었지만 그닥저닥 잘 버텨내었다. 
수많은 지도 쪽지!에 지치기도 했지만 소아과를 지나고 나니 차팅에 자신감도 생기고..
그리고, 우선 웃을 일이 많다.
국내 몇 case 이런 식으로 드물고 심한병으로 입원하였음에도..
어린아이들은..
웃음을 준다. 
그 웃음끝에 그 아이들의 운명이 너무 슬퍼서 입술을 꽉 깨문적도 많았지만, 
병동에서 아무 생각없이 가장 많이 웃었던 때가 소아과 주치의를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열흘 안팎의 당직은...
아..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다.
밤을 새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당직실이 아닌 처치실에서 쪽잠을 잔게 대부분이었다.
일이 느리고 걱정이 많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내공 역시 분명히 험했다. 

소아과 특유의 형식과 순서를 중시하는 분위기, 했던 일을 세번네번 확인받는 짜증스러움에 뒤로가서는 꽤나 지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어쨌거나 아주 아프지만 않는 날이면, 행복하게 지냈다. 
이곳이 병원이라는 사실도 잊은채로..
그 아이들 옆의 어머니들도 현실감을 잊은채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병동에서 잘 보내었다. 

절대 아프면, 절대 후유증이 남으면, 절대 죽으면..안돼...

그 마음이 나를 너무 괴롭혀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떠나올때는 못내 아쉬웠던.. 

소아과 주치의들은 내환자라고 안그러고, 내 애기..이런다. 
너네 환자 안그러고 니 애기.. 이런다..
뭐 , 그냥 그렇게 된다. 

소아과 주치의를 맡고 난 후 아이 울음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는 소리 등에 매우 관대해 졌다. 공공장소에서 민폐끼치는 아이를 보면 엄마는 말리지도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들은 원래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심도깊은 insight 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후후
사실, 내 애기..아니 내 환아가 복도를 다다다 뛰어다니면 남몰래 뿌듯했었다. 짜식.. 오늘은 건강한데.. 이런 심정.. 

아픈 아이들은 조용하다. 
관심이 없다. 
칭얼거리는 것도 기운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한다. 
아이가 힘있게 울때, 웃을때.. 뛰어다닐때..
행복했었다. 
아이가 반응이 없을때, 나쁜 경과를 차곡차곡 밟아 갈때, 넌 아직 어린데..라는 억울함에...
화가 나고, 무기력한 내 모습에 이대로 내가 꺼져버렸으면 싶을때도 있었다.
아이에게 중환이라는 점차적으로 나빠지고야 말거라는 진단을 내릴때는 이 모든 일이 내 책임같아, 아이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소아과는 아이가 +100, 아이엄마 및 보호자 -50, 소아과 의사 및 간호사 -49해서 간신히 +1점 정도인것 같다. 
난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아과를 할 용기!!가 생기나 보다. 
 
소아과를 떠나면서 어른 사람을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는데, 동인까지 다녀온 지금..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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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1. 22. 12:05

3월 31일 12시까지 내과 환자들 정리하고, 4월 1일 외과로 넘어갔다.
정신이 없었다. 정말 하루 종일 너무 너무 정신이 없었다.
 낯선 수술명, 환자들, 무슨 수술을 한건지 뭘 해줘야 할지, 새로운 용어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자들..
지금쯤이면 그리 힘들지 않았을것 같은데..
그날 하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속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달마다 익숙해질  낯설음과 막막함을 가장 외롭게 느꼈었다.
첫날부터 회식이라니.. 첫날 오더도 덜냈는데, 자꾸 나가자는 2년차 선생님앞에서 한숨을 쉬면서 마우스를 내팽게쳤다. 그사람들이랑은 요즘도 어색하다. 허허..
그주 주말이 지나고나서야 정신이 좀 들고, 외과 사람들도 싹 바뀌고..
인턴때 짱돌로 소문났던 사람이 치프였다. 3년이라는 세월은 어쨌거나 사람을 바꿔놓는것인지.
치프다웠다.
그 후의 시간들은 익힌 일을 또하고 또하고 또하는 시간들이었다.
극단적인 수면시간, 극단적인 금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회식까지..
4월 한달이 지나고나서 결정타를 맞은 체력은 여름휴가때까지 나를 골골거리게 만들었던 듯 싶다. 그래도 그 한달도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줬었다.
오히려 외과적인 것보다 내과적인 것들을..그리고.. 사람들에게 특히나 암 초진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수술후 병기판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의사의 위로와 설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의 암이 깨끗이 제거되었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전엔 무슨말로도 웃게도 울게도 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이 말이다. 나름 철든 30대라고 믿었는데..
내가 얼마나 매정하고 지적인 내용으로만 환자를 대해왔었는지...
내 부족함이 나를 가르쳤다.
잊을 수 없는 제주도 할아버지...
이제 상처만 붙으면 퇴원이라고 하는 그순간 AHF, intractable A. fib..
할아버지가 나빠진 새벽 3시부터, 결국 처치실에서 이약 저약 쓰다가 MICU 전동간 저녁무렵까지.. 그런 생지옥은 다시는 잊을 수 없을 거다.
애써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믿는 할머니, 망연해진 자녀들,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던 할아버지..
암센터에서 본관으로 할아버지 침대를 끌고 넘어가면서 화사하게 피어있는 벗꽃을 보면서 눈물을 참으려고 얼마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른다.
정작 그때쯤엔 HR 도 거의다 잡혔었는데..
어쨌거나 할아버지가 퇴원하면서 내게 고마워해준 그게 너무 고마웠다.
내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일단의 크론 환자들..
젊은나이, 활짝 인생을 만개시켜야 할 나이에 반복되는 입원과 수술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사람들. 병원을 그렇게 들락거리면서도 오히려 굳어진 그들만의 고집으로 몸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는 답답함.
크론으로 갑갑한 그 와중에 UC 가 와서 별스럽지 않게 여겼는데 환자에겐 그게 아니었나 보다.
도대체 말을 드럽게도 듣지 않아 이제 멱살잡이까지 할 지경에 이르른 환자와 어느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병의 예후를 듣고 나서 이게 죽을병이 아니란 말을 듣고 나서 그 환자는 극적으로 개심했다. 그냥.. 불안한 거였는데.. ileostomy는 3개월 후 제자리를 찾을 거란 말에 환자는 그 나이많은 남자는 눈빛가득 감동의 눈물까지 보였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무작정 희망을 얘기할 수도 혹시 있을지 모를 절망을 숨기지 않는 것이 이들에게 절망이 되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외과의사들의 무심함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무심하기에 차트만 쓰고 있어도 한숨밖에 안나오는 중환을 보고도 웃으며  수술장을 열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단 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능력도 걱정도 없는 무식하고 무심한 의사는 특히 그런 외과의사는..참기가 힘들다.

마취과 스텝이랑 수술방 문제로 싸운날, 수술장으로 들어와 사과를 하라는 스텝의 요구를 들어주러 수술장으로 향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게 생각난다. 그날 2년차 선생님의 중재로 대면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날 사과를 해야만 했었다면 정말 큰 상처였을 거다.

임신중 장중첩으로 장절제술을 하고 암진단까지 받았던 산모, 이미 임파절전이까지 손쓸 수 없이 퍼졌지만 어쩌면 VVIP이기에 아무도 예후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던 변호사 아저씨, 결국은 얼굴 붉히며 퇴원시켰던 엄살 심했던 동갑내기 환자. 제주도에서 복부를 open 한채 후송되어왔던 젊은 남자 환자..hemorroid로 Hb가 5점대까지 떨어졌던 아저씨 등등..
극적인 상황에서 만나서 안녕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퇴원시켰던 사람들..

다음달이면 upper GI다..
그때보다는 덜 두렵다. 무엇보다 일단 내가 무엇을 할지 알고있고, 내과적 지식이 어느정도는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조금은..아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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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
기록 2011. 11. 22. 11:32
첫 출근부터 일이 꼬였다. 난 수액처방 하나 낼 줄 모르는데, 간만에 쓰는 입원기록이 낯설기만한데..
아침 회진을 돌고나니 할일이 없었다. 병동을 어슬렁 거리자니 쑥쑥했다. 
내과 주치의는 일에 치여 거의 넋이나간 모습이었다. 
오후 신환이 별로 없단다. 
그래서 그냥 다 나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굳이 내과 주치의 이름으로 된 환자까지 다 넘겨줬다. 그게.. 시작이었다. 약속처방으로 해결이 나지 않을 중환..
DKA  ?NKHSS? 뭐 어쨌거나 고혈당으로 엉망진창이 된 사람을 맞이해 셀프 당직..
편하게 넘어간다는 내분비 내과 였는데, 아직 일이 익숙치 않아 삽질도 많이 했고, 바닥이 친 지식을 다시 채우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또 과다의욕으로 환자들도 열심히 보기도 했고. 하하..
어쨌거나 힘들게 본 만큼 당뇨환자는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걸로 됐다. 
쿠싱도 꽤나 봤다. 뇌하수체 종양도 꽤나 봤고 생각보다 심한 말단비대증도 봤고, 심지어 내환자는 아니었지만 papillary adeno ca로 죽는 사람도 봤고, hypothyroidsm으로 seizure 하는 사람도 봤다.  

첫환자였던 pancreatecomy한 alcolism DM 아저씨도 생각나고, DM, hypothyroidsm, osteoporosis 등 여러가지 내분비질환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치매가 와서 본인약도 밥도 못챙겨먹던 할머니도 생각난다. type 1 DM인데 인슐린 안쓰고 DKA 로 왔던 20살 여자아이도, type 1DM  초진으로 왔던 간호사도, 사실 HNP인데 neuropathy로 알고 내분비로 입원했던 성격 말도 못하게 까탈스럽던 할머니도 생각난다.

이병원쯤에 당뇨 등으로 입원하려면 어느정도는 경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때만 해도 말안듣는게 미웠지 돈없어서 치료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그때 속끓이면서 눈물 짰던것 생각하면 내가 아직 험한꼴을 아주 덜 봤었구나 싶다.

어쨌거나 내과로 시작했던 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중환을 봤던 것도, 당직을 섰던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 7시마다 있었던 김광원 교수님의 회진도 좋았다.
내분비 전반에 대한 조언들도 참으로 대가 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아침 회진시간에 내눈 가득히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던 그말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왜 사람은 죽으면 안되냐는.."
지금은 무슨 말 때문에 그렇게 눈물이 났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참 내 맘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던 질문의 정곡을 찔린듯했다.
언젠가 죽을 사람들을 위해, 이들을 살려줄수없는 내가 무엇을 할까.
무슨 맘으로 이들을 직면할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마지막날까지 참 정신없이 돌아갔지만,
처음 시작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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