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011. 11. 22. 12:05

3월 31일 12시까지 내과 환자들 정리하고, 4월 1일 외과로 넘어갔다.
정신이 없었다. 정말 하루 종일 너무 너무 정신이 없었다.
 낯선 수술명, 환자들, 무슨 수술을 한건지 뭘 해줘야 할지, 새로운 용어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자들..
지금쯤이면 그리 힘들지 않았을것 같은데..
그날 하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속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달마다 익숙해질  낯설음과 막막함을 가장 외롭게 느꼈었다.
첫날부터 회식이라니.. 첫날 오더도 덜냈는데, 자꾸 나가자는 2년차 선생님앞에서 한숨을 쉬면서 마우스를 내팽게쳤다. 그사람들이랑은 요즘도 어색하다. 허허..
그주 주말이 지나고나서야 정신이 좀 들고, 외과 사람들도 싹 바뀌고..
인턴때 짱돌로 소문났던 사람이 치프였다. 3년이라는 세월은 어쨌거나 사람을 바꿔놓는것인지.
치프다웠다.
그 후의 시간들은 익힌 일을 또하고 또하고 또하는 시간들이었다.
극단적인 수면시간, 극단적인 금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회식까지..
4월 한달이 지나고나서 결정타를 맞은 체력은 여름휴가때까지 나를 골골거리게 만들었던 듯 싶다. 그래도 그 한달도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줬었다.
오히려 외과적인 것보다 내과적인 것들을..그리고.. 사람들에게 특히나 암 초진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수술후 병기판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의사의 위로와 설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의 암이 깨끗이 제거되었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전엔 무슨말로도 웃게도 울게도 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이 말이다. 나름 철든 30대라고 믿었는데..
내가 얼마나 매정하고 지적인 내용으로만 환자를 대해왔었는지...
내 부족함이 나를 가르쳤다.
잊을 수 없는 제주도 할아버지...
이제 상처만 붙으면 퇴원이라고 하는 그순간 AHF, intractable A. fib..
할아버지가 나빠진 새벽 3시부터, 결국 처치실에서 이약 저약 쓰다가 MICU 전동간 저녁무렵까지.. 그런 생지옥은 다시는 잊을 수 없을 거다.
애써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믿는 할머니, 망연해진 자녀들,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던 할아버지..
암센터에서 본관으로 할아버지 침대를 끌고 넘어가면서 화사하게 피어있는 벗꽃을 보면서 눈물을 참으려고 얼마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른다.
정작 그때쯤엔 HR 도 거의다 잡혔었는데..
어쨌거나 할아버지가 퇴원하면서 내게 고마워해준 그게 너무 고마웠다.
내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일단의 크론 환자들..
젊은나이, 활짝 인생을 만개시켜야 할 나이에 반복되는 입원과 수술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사람들. 병원을 그렇게 들락거리면서도 오히려 굳어진 그들만의 고집으로 몸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는 답답함.
크론으로 갑갑한 그 와중에 UC 가 와서 별스럽지 않게 여겼는데 환자에겐 그게 아니었나 보다.
도대체 말을 드럽게도 듣지 않아 이제 멱살잡이까지 할 지경에 이르른 환자와 어느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병의 예후를 듣고 나서 이게 죽을병이 아니란 말을 듣고 나서 그 환자는 극적으로 개심했다. 그냥.. 불안한 거였는데.. ileostomy는 3개월 후 제자리를 찾을 거란 말에 환자는 그 나이많은 남자는 눈빛가득 감동의 눈물까지 보였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무작정 희망을 얘기할 수도 혹시 있을지 모를 절망을 숨기지 않는 것이 이들에게 절망이 되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외과의사들의 무심함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무심하기에 차트만 쓰고 있어도 한숨밖에 안나오는 중환을 보고도 웃으며  수술장을 열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단 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능력도 걱정도 없는 무식하고 무심한 의사는 특히 그런 외과의사는..참기가 힘들다.

마취과 스텝이랑 수술방 문제로 싸운날, 수술장으로 들어와 사과를 하라는 스텝의 요구를 들어주러 수술장으로 향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게 생각난다. 그날 2년차 선생님의 중재로 대면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날 사과를 해야만 했었다면 정말 큰 상처였을 거다.

임신중 장중첩으로 장절제술을 하고 암진단까지 받았던 산모, 이미 임파절전이까지 손쓸 수 없이 퍼졌지만 어쩌면 VVIP이기에 아무도 예후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던 변호사 아저씨, 결국은 얼굴 붉히며 퇴원시켰던 엄살 심했던 동갑내기 환자. 제주도에서 복부를 open 한채 후송되어왔던 젊은 남자 환자..hemorroid로 Hb가 5점대까지 떨어졌던 아저씨 등등..
극적인 상황에서 만나서 안녕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퇴원시켰던 사람들..

다음달이면 upper GI다..
그때보다는 덜 두렵다. 무엇보다 일단 내가 무엇을 할지 알고있고, 내과적 지식이 어느정도는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조금은..아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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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Hannah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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