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12. 4. 12. 18:02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하고 무재 씨가 나무뿌리를 잡고 비탈을 내려가느라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략.............................................................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 약품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림자가 일어서더라도,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는 거예요.

 

농부의 아내가 불을 끄자 문득 눈앞이 닫힌 것처럼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들어 올려서 얼굴 쪽으로 천천히 내려 보아도 그 손이 보이지 않았다. ..............략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을 의심하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가마와 가마와 가마는 아닌 것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게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마링지. .......략....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여 씨 아저씨는 삼십 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음향 기기 수리를 하고 있었다. 기술에 비해 수리비는 저렴하게 받는 편이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답답하게 여겨질 만큼 느긋한 면이 있어서 까다롭거나 무례한 손님을 만나면 종종 다툼이 벌어졌다. 여 씨 아저씨는 그런 손님들의 물건 안쪽에 페인트로 조그만 표식을 해 두고 그 후 에 그 손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든가 모르는 척을 하고 기계를 맡겨 오면 뚜껑을 따 놓고 페인트 자국을 확인하며 이 자식 이거 그때 그 자식. 이라며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런 다음엔 이쪽에서도 모르는 척, 기계를 수리해서 돌려보내곤 했다.

 

유곤씨는 뭘하러 왔던 걸까요. 라고 물으면 외로워서 들른 거라고 여 씨 아저씨가 말했다.

유곤 씨가 외로운가요?

외롭지.

수리실을 자주 드나드는 상가 오디오 상인 중엔 저런 자에게 뭘 돈을 주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여 씨 아저씨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입을 먹는 입

 

팔월엔 비가 내렸다. 거의 매일 내렸다. 퍼붓듯 쏟아지다가 반짝 갰다가 꾸물꾸물 어두워졌다가 툭툭 떨어지다가 다시 한차례 퍼붓고 점차 가늘어져서 그 비가 밤새 이어지는, 뒤끝 있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불이 묵직해서 이따금 보일러를 틀어 두고 잤다.

 

해롭다거나 해롭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기준의 문제입니다. 내 기준으로 쥐며느리는 충분히 해충입니다. 사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유라고 해봤자 심미적으로 보기에 좋지 않다는 정도라지만 말입니다. 쥐며느리라는 것은 아주 작은 데다 여러 개의 발로 매우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그런 생물이 내가 잠든 사이 귀로 들어오거나 한다면 괴로울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주 귀로 들어오나요?

라고 묻자, 만에 하나, 라면서 유곤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귀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무재 씨가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별로, 라고 나는 말했다.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은데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의기소침하고 있던 참이에요.

...............략..................

툭, 툭, 하는 소리를 우산 속에서 듣다 보니 재미는 몰라도 의기소침 했던 것이 얼마간 가라앉는 듯했다.

 

 

정전

 

비가 그치고 난 뒤로 무더위가 이어졌다. 하늘은 새파랗게 솟는 듯하고 구름도 희고 두꺼워서 보기엔 좋았으나 낮이고 밤이고 무더웠다. 햇빛 속을 조금만 걸어도 끈끈한 땀이 솟아서 불쾌한 느낌으로 이마가 식었다.

 

별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나는 아버지가 산 물고기들을 욕실에 이렇게 놓아두는 것이 싫었다. 사나흘 걸러 아버지가 잡아들이는 민물고기의 기척으로 집 안이 비려지는 것이나, 세수를 하려고 수도꼬지나 세면대를 잡았다가 손바닥에 비늘 조각이 들러붙는 것이나, 소변을 누려고 변기에 앉았다가 타일 벽에 말라붙은 비늘을 보게 되는 것이나, 밤에 불을 끄고 방에 드러누우면 물고기들이 빡빡 질식해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등등을 가만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이 아버지 손에서 컸다.

도시락은 성실하게 챙겨 주되 반찬은 단무지, 라는 식으로 무심하다면 무심하고 본래가 무뚝뚝하다면 무뚝뚝하다고 할 수 있는 양육이었다. 별다른 대화도 없는 부녀간이었다.

 

비질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고 나가 보니 계단에 검은 것이 엎드려 있었다.

매미였다. 배가 굵었고 한쪽 날개 끝이 찢어져 있었다. 죽었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자 건드리기만 해 보라는 듯 뭉퉁한 가슴과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나는 열일곱 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따돌림이 있었다. 아이들 일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는 일들을 더러 겪었다. 괴롭히는 처지에서도 괴롭히는 것이 지루해지고 귀찮아지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길에서 동급생과 마주쳤다. 길 저 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괴롭히는 무리 안에서도 괴롭힘이 유난했던 아이라서 나는 틀림없이 시비를 걸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장한 채로 고개를 들고 걸어갔는데 막상 그쪽에선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며 나도 지나갔으나 이튿날 무리 속에 섞여서 열심히 괴롭혀 대는 그녀를 보면서 뭔가가 맥없이 무너졌다. 이런 이상한 악의를 무심한 듯 버티는 것도 무상해지고, 무리 틈에서 더는 애를 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방을 가지고 학교를 나섰다. 바보들, 바보들 하고 생각하며 집까지 걸어와서는 저녁에도 바보들, 바보들,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튿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전화할게요. 해 두고 가는 무재 씨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데도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아서, 아 그럼 됐다, 고 나는 혼자서 토라져 있었다.

 

그만둘까요.

어째서요.

이런밤에 이런 이야기는 너무 얄궂어서요.

얄궂을 것이 있나요?

아버지는 죽어서 빚을 남기고 소년은 빚을 갚으며 어른이 되어 간다는 이야기이므로.

그렇게 되나요.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고, 빚의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지고, 전심저력으로, 그 틈에 점점 불어나는 먹고 사는 비용의 빚을 져 가는 일의 연속.

 

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원 가량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 일개. 사십 개를 사면 사십일 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심일 개, 백 개를 사면 백한 개, 하며 매번 살 때 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가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무재 씨, 원 플러스 원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무재 씨도 그런 것을 사 본 적 있나요.

가끔은.

하나를 사면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준다는 그것을 사고 보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각은 어째선지 들지 않고요.

그러고 보니.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오무사

 

오무사는 전구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얼핏 지나가면서 우연히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그런 가게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갈 수 있는 가게였다.

 

바쁜 일로 서두르며 오무사까지 걸어갔어도 그거 주세요, 하고 난 뒤로는 오로지 그의 패턴으로만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오무사를 방문한 손님들은 입구에서 넋을 놓고 선 채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거나, 근처 구멍가게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기다렸다가 전구를 받아 가곤 했다. 노인은 느릿해도 대단히 집중해서 움직였으며 그 움직임엔 기품마저 배어 있어서, 손님의 처지에선 재촉할 틈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당장 철거되는 것은 다섯 개의 건물 중 가동 하나뿐인데도, 기사 제목이 일률적으로 전자상가 철거로 마치 상가 전체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듯 구성된 것을 두고는, 그런 식으로 미리 상권을 죽여서 이후의 일을 쉽게 도모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죽어가고 있는 놈더러 자꾸 죽어라, 죽어라, 한다며 여 씨 아저씨는 입맛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은교 씨는 슬럼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가난하다는 뜻인가요?

나는 사전을 찾아봤어요.

뭘라고 되어 있던가요.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 하며 무재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략....................

나는 슬럼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어도, 여기가 슬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나는 이 부근을 그런 심정과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데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 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항성과 마뜨료슈까

 

그런 방식으로, 축제가 벌어지면 나동 북쪽 외벽과 정면 진입로엔 장막이 걸렸고, 그 뒤쪽엔 아무것도 신경 쓸 것이 없다는 듯 고성과 방가가 이어졌다. 장막 저편이 시끌벅적해질 수록 나동은 없는 듯 어두워지고 적막해졌다. 나동의 남쪽 외벽과 엘리베이터 곁엔 사십 년 된 나동이 아직 장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십 년은 더 장사를 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과 알림 쪽지가, 어째선지 몹시 더렵혀진 채로 붙어 있었다.

 

나는 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잔뜩 있는데도 그중에 뭐라고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자전거 핸들을 꽉 잡았다가 느슨하게 놓았다가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무재 씨는 침착하게 무를 고른 뒤에 쪽파로 할까요, 실파로 할까요, 라며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의 뒤쪽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박스를 줍는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동네에서 거기까지 박스를 주우러 온 할아버지를 맞닥뜨려서, 다툼이 일어난 거예요. 뭔가 시끄러워서 나가 보니 대낮에 길 복판에서 박스와 넝마 몇 가지를 두고 고래고래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어요. 나로선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오가고 두 노인이 서로 격렬하게 저주하며 상대방의 손수레에서 넝마를 끄집어내 던지다가 할아버지는 가고 할머니가 남았거든요. 할머니가 분하고 원통하다고 가슴을 두드리며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요. 능소화가 늘어진 콘크리트 블록 담 앞에서 그녀의 그림자가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머리를 그녀 쪽으로 기울이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요.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그 길엔 넝마가 실린 그녀의 손수레가 남아 있었어요. 한낮에 그걸 보고 나도 집으로 들어갔는데 해 질 무렵에 나와 보니 그대로 수레가 남아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일까, 히고는 말았는데 이날 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였어요. 마당에 넘어져 있는 그녀를 동네 사람들이 발견했어요. 지병 때문에 가슴이 굳은 것이라고 당시 어른들이 말했지만 나는 그들이 쉬쉬하며 수순거리는 것처럼, 그녀가 결국 그림자를 견디지 못해서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식들이 찾아와서 장례를 치르고 난 뒤로도 그녀의 손수레는 며칠이고 모퉁이에 남아 있었엉. 실린 것도 몇 가지 없이 박스 몇 개하고 스티로폼 조각하고 비닐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것들 때문에 죽는구나, 사람이 이런 것을 남기고 죽는구나, 생각하고 있다가 조그만 무언가에 옆구리를 베어 먹힌 듯한 심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 갔다는 이야기예요.................................략...................................................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며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략..................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런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하늘이 굉장하네요.

네.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역시 유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별이요?

시끄럽고 분주하고 의미도 없이 빠른 데다 여러모로 사납고.

.... 무재 씨, 그건 이니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 같아요. .....략.....

아무튼 이런 광경은 인간하고는 너무도 먼 듯해서, 위로가 되네요.

 

충분히 갈 수 있다는 대답을 듣고도 나는 불안했다. 은교 씨, 뭘 그렇게 걱정하나요. 너무 어두워서요. 밤이니까 어둡죠. 그게 아니고요. 너무 어두워서, 정말로 밝은 곳에 당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요. 말도 안되는데요 무재 씨, 자꾸자꾸 드네요, 그런생각이.

 

....이렇게 어두운데 누굴 만날 줄 알고요.

만나면 좋죠, 그러려고 가는 거잖아요.

만나더라도 무재 씨, 그쪽도 놀라지 않을까요, 우리도 누구라서, 라고 말하자 무재 씨가 고개를 기울이고 나를 바라 보았다.

 

 

작가의 말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몇 있으므로

세계가 그들에게 좀

덜 폭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 세계는 진작부터

별로 거칠 것도 없다는 듯

이러고 있어

다만

곁에 있는 것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거나 하는

초자기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

 

 

작품해설  (신형철, 문학평론가)

 

이 소설을 몇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도심한복판에 사십 년 된 전자상가가 있다.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내력이 하나씩 소개된다. 그 와중에 이 소설은 시스템의 비정함과 등장인물의 선량함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과연 살 만한 곳인지를 묻는다.

이 소설을 두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소설은 우선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이 사랑은 선량한 사람들의 그 선량함이 낳은 사랑이고 이제는 그 선량함을 지켜 나갈 희망이 될 사랑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윤리적인 사랑의 서사가 되었다.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절로 된 장시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고맙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글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1. 현실 - 자명성의 해채

 

문학의 할 일 중 하나는 우리가 현실에 관해 생각한는 것을 방해하는, 자명함에 관한 그 잘못된 믿음을 해체하는 일이다. 이런 공간에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말 글대로 실감하게 하고, 나의 공간과 삶이 소위 현실이라고 하는 것과 분리돼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일이다.

 

2. 환상 - 불행의 단독성

 

황정은이 환상을 동원하는 까닭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방금 짚어 본 대로 인물들이 겪는 불행이 현실 안에서 현실적인 수단으로는 맞설 수조차 없는 종류의 것일 때, 소설가는 그 극한의 불행을 어떻게 소설화해야 하는가, 이것은 미학(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자세)의 문제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불행들을 전해 듣지만 그 불행들은 상투적인 표현들로 이차 가공되면서 그 단독성을 상실하고 일종의 정보들로 추락하고 만다. 너무나 많은 불행이 있고 우리는  그 불행에 무뎌진다. 앞에서 소설가들은 현실이라는 개념의 자명성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같은 방식으로, 소설가는 '불행의 평범화'에 맞서서 '불행의 단독성'을 지켜 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 환상이라는 장치가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한 은행원을 벌레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불행이 여전히 기억되는 것처럼,.....략........................

이것은 그 무슨 발랄한 현실일탈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일무이한 불행들에 대한 소설가의 예의다.

 

그러니 이 작가의 환상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라면 상투적인 표현만큼이나 지나치게 유려한 표현도 때로는 비윤리적일 수 있다는 결벽증이 낳은 자구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3. 언어 - 일반화의 폭력

 

모든 낱말들에는 때가 묻어 있다는 것, 그래서 시인이라면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런즉 '언어상황의 청소'가 먼저 이루어져야 겨우 한 낱말과 손을 잡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언어와 서먹해지는 순간을 겪는다.

 

소설가는 언어의 일반성과도 싸워야 한다.

이 작아의 이런 작업 때문에 우리는 익숙한 말들 앞에 처음 인 듯 서게 된다.

 

4. 대화 - 윤리적인 무지

 

A는 B일까요?음, 아닐까요? 그렇죠, 역시 그런 것일까요?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대화가 조금 이상해 보이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왜일까. 대화들에 응당 개입하곤 하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 아닌지.

여기에는 독단적인 판단이 없고 그 판단의 강요가 없으며 효율을 위한 과속이 없다. 그 대신 어떤 윤리적인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대화를 느리고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말해야 할까. 언뜻 천진무구해 보이는 이 대화는 사실 전력을 다해 이루고 있는 대화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현실의 자명성, 불행의 평범성, 언어의 일반성 등으로 규정해 온 어떤 요소들을 대화 안에 들여놓지 않기 위해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대화를 어떻게 명명하면 좋을까. 나는 이것을 '윤리적인 무지'의 대화라고 부르고 싶다.

세속적인 이해타산에 너무나 밝은 우리들의 대화는 똑똑하게 슬프고, 그런 것들에 무지한 이 인물들의 윤리적인 대화는 어쩐지 무의미해 보이면서 아름답다.

 

5. 사랑 - 연인들의 공동체

 

그들 자신은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 둘의 만남만큼 아프고 의연한 사랑을 함부로 상상하기 어렵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연인의  가마를 유심히 보면서 그를 유일 무이한 단독자로 발견해 내는 일이고, 설사 내가 쇄골이 반듯한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쇄골이 반듯하지 않은 연인에게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라고 말해 주면서 그 단독성을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절대화하는 일이다.

 

이 사랑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간절함은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응원하는 심정과 닮아 있다.

 

 

이런 소설을 읽은 것이다.

현실의 자명성, 불행의 평범성, 언어의 일반성, 윤리적인 무지, 연인들의 공동체... 저렇게 조각내어 말할 수도 있지만, 모든 좋은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도 저 요소들을 표 나지 않게 뒤섞어서는 그저 황정은 특유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정서와 울림을 이룩해 냈다.

 

이 작품은 다시 읽기를 유도하고 또 견뎌 낸다. 이 소설의 문장들은 삶의 터전 바깥으로 비틀비틀 끌려 나가는 사람의 속도로 걸어가고, 이 소설의 상징들은 절반쯤 무너진 건물의 파편들처럼 처연하게 흔들리며, 이 소설의 대화들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가장 진실해질 때의 그 표정으로 오고 간다. 그런 것들이 절규도 환희도 없이, 훈계도 신파도 없이, 170쪽의 짧고 깊은 소설을 만들어 냈다. 근래의 한국 소설이 도달한 가장 윤리적인 절망과 희망 앞에서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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