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10. 6. 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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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2분만 지나면 늘 같은 얘기로 돌아가지. 내가 어쩌자고 틈만보이면 칼을 꽂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랑 같이 사는지 모르겠어."..............략..................
"난 충분히 냉정해요. 그저 내가 하는 일마다 당신이 비평을 하니까 지겨울 뿐이에요."

- 1. 실생활의 키스 . 언니와 형부 존이 히스로 공항의 출국장에서 보였던 종류
  2. 예술적인, 가짜 키스. 주로 할리우드 영화나 소설, 그림에 나타나는 거창하고 관능적인 노력.

-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찌 보면 과거에 같이 잔 사람들의 습관이나 기억과 충돌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형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이 흔적이 넘쳐난다.

- 성생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과 성행위를 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을 차거나 그 사람에게 채였다는 뜻이었다. 좀 어두운 면에서 보자면 섹스 기교의 역사는 실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 여기서 욕망의 두가지 형식을 끄집어낼 수 있다. 하나는 '음식이 내 입맛에 꼭 맞으니 레스토랑이 마음에 드네.'라는 자율판단. 다른 하나는 '다들 그렇다니까 여긴 훌륭한 레스토랑일거야.'라는 모방심리.
전자인 경우 욕망이 그 대상과 직결된다.
후자인 경우 먼저 중간 경로, 곧 신문의 평이나 유명인의 입을 거쳐 욕망이 걸러진다.
앨리스는 두가지 형식 중 언제나 후자쪽을 따르는 편이었다.  갖고 싶은 옷, 구두, 레스토랑, 애인에 대한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인상에 맞춰지곤 했다.

- 멜템에서 첫 코스가 끝날 즈음, 앨리스는 지금 행복한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가봐야 할 그곳'에서 식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가봐야 할 그곳'에 있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일까?
다른 사람들이 바로 거기라고 정한 곳에 가고 싶다는 것.
그것은 중심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 그래서 의심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의 중심에있고 싶다는 갈망.................................략..............................................
   북적북적한 식당에서 손님들은 서로 흘끔대면서, 사회적으로 가치가 인정된 이물을 부지런히 찾았다. 14번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15번 테이블의 손님들이 자신들과는 달리 재치가 있으며, 자신들이 읽지 못한 책들을 읽었으며, 자신들보다 더 흥미로운 친구들과 어울릴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15번 손님들을 똑같은 염원을 담은 눈길을 어깨 너머 16번 테이블에 보냈으며, 16번 손님들은 17번 손님들을, 17번 손님들은 18번을 마찬가지로 건너다 보았다.
  물론 레스토랑에 '중심' 따위는 없었다.................멜템은 공허하지만 매혹적인 관념을 체현함으로써, 중심지라는 인식을 솜씨 좋게 퍼뜨려 성공을 거두었다.

- 다른 사람들이 갈망하는 남자가 바로 그녀를 원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허약한 자존감을 붙들어주었다.  애인에게 선물받은 타이가 100개쯤 되는 남자는 타이가 하나뿐인 남자보다 가치 있었다.

-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 식당을 런던 최고로 꼽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 
  기꺼이 여론을 따르는 앨리스는, 남들이 부러워할 남자를 만나려면 세련된 레스토랑 한구석에 지루한 얼굴로 앉은 금발 미인들에 대해 심술궂지만 정확하게 비평하는 일을 삼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잡지는 앨리스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했다. 잡지는 지금 입은 옷을 한 해 더 입어도 된다든지,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든지, 유명한 사람을 안다거나 침실 색깔이 무엇인지는 무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의상 난을 보면서 자신의 옷장에는 없는 옷 때문에 서글펐고, 여가 난을 보면 자신이 가보지 못한 세계 곳곳의 햇살 눈부신 장소들이 떠올랐다. '삶의 스타일'이라는 난을 보면, 자신에게는 아마 제대로 된 삶도 없고 스타일은 틀림없이 없다는 느낌이 확고해져서 자존심이 상했다.

- 앨리스에게 자아 발견이란 그중의 한 자아를 찾는다는 의미였다. 이 지긋지긋한 빨래건조기를 멈추고, 어느 정도 안정감과 평온을 줄 수 있는 채널을 찾는 것이었다.

- 에릭이 감상(곧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에 반대하면서, 굳은 의지와 품위를 가지고 당당하게 장애를 극복하는 이들을 존경한다면 그건 앞뒤가 맞았다. 하지만 감상적이지 않은 엘릭은 약자를 경멸하고 강자를 존경하는 중간에 멎어있었다.

-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나는 엄청난 모험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평소 자신감 넘치는 미인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내 두려움과 공포를 줄줄 꿰고 난 뒤에도, 당신은 날 사랑할 것인가.

- 감정의 옷입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른 속, 상징적인 생식기의 약함, '당신이 필요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만든 옷장 전체로 이루어진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사람과 시시덕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에릭은 연애를 할 때마다 이중 안감을 넣은 양복으로 옷장을 채웠다. 사랑이 대들보가 아닌 삶, 행복의 토대를 자율이 아닌 다른 것에 양도할 필요가 없는 삶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 에릭은 무게를 폭넒게 분산했다. 여자 친구를 몇 명씩 유지하는 것(거절을 당하더라도 곧바로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위험을 줄이려고), 어느 집단이 등을 돌려도 생존할 수 있게 충분히 많은 집단과 교제하는 것, 어느 거래가 실패해도 견딜 수 있게 돈을 많이 버는 것 등이 그 남자가 세운 기둥들이었다.

-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는 나쁠 수가 있다.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
  에릭은 빚을 제때 갚긴 했지만, 앨리스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너무 급하게 빚을 갚고 그대로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 남자는 그녀와 똑같은 감정의 성숙을 실현하지 못했다.

- 누군가의 인품을 빨리 알고 싶다면 우유를 한 모금 입에 가득 머금었다가 그에게 뿜어보라  <제니 홀처>
....................우유 실험을 상상하면서 앨리스는, 사람 중에는 반응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류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알 수 없는 부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사랑의 영속성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비에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다른 정인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렛 케이크를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뿐 사랑이 종말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는 믿음.................그 남자가 입을 다물고 대화가 공해해지는 시간 X와 그 남자가 머리에 키스하는 시간 Y사이에는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앨리스는 이런 시간을 감당하는 데 통달해서, 위니캇의 아기처럼 그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버려진 아기의 원초적인 고통이 밀려와서, 씁쓸하게 자문하곤 했다. '내가 뭘 어쨌기에?'

- 1. 앨리스는 에릭을 사랑했다
  2. 그 남자는 그녀를 초대하지 않아, 그녀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했다.
  3. 하지만 실제로 합당하게 불평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증오와 실망을 표현하지 못하고...
  4. 그녀는 조용히 에릭을 증오하기 시작햇다.
  5. 그녀는 그 남자를 비난하는 자신을 참을 수 없어서, 자신을 미워하면서 침대로 갔다.

'당신을 날 많이 사랑하지 않아'라는 억압된 두려움과 '내가 말도 안되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면 안 되는데'라는 타고난 심리적 규범이 폭발적으로 뒤섞여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애인의 편집증을 낳는 마법이다.

- 사랑의 권력은 아무 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 사랑의 직각은 다른 일이나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태도를 설명해준다. A는 B를 사랑하지만 B는 C에 더 관심을 쏟는다. B가 C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B에 대한 반발을 불러오지 않고 드리어 B의 값어치를 높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느 선까지는 A는 B가 이 C라는 대상에게 마음을 쏟기 때문에 B를 사랑한다. B는 취향이 고매해서 A의 말을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다. C는 자기애가 부족한 A에게 없는 자질을 가졌다고 여겨지므로, A는 B를 매개로 C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 하지만 사람을 괴롭히는 글은 명료하게 술술 읽히는 글보다 왠지 그럴듯하고 더 심오하고 더 참되게 받아들여진다. 하이데거나 후설에게 빠진, 예민한 독자는 '이 글은 정말 심오하구나.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걸 보면 나보다 똑똑하구나. 이해하기 어렵다면, 틀림없이 이해할 만한 가치가 더 클거야.' 라고 생각한다. - 책을 내던지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말하지 않고.
  학구적인 자기 학대는 은유적인 편견을 반영한다.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략........................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 앨리스는 이런 관심이 기쁘면서도 석연찮은 기분을 느꼈다. 에릭은 그녀가 약하고 자신감을 잃을 때보다는 강하고 일을 잘할 때 훨씬 친절했다. 사실 그녀가 형편이 좋을 때는 그 남자에게 저녁을 대접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 스스로 예쁘다고 믿을 때는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 행복한 영혼이 웃는 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몰이 아름답거나 애인이 방금 전화를 걸었거나 ㅎ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쾌증에 사로잡힌 이들이 행복한 것은, 단지 '그들이 불행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유연하게 통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그렇게 신랄하게 구는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누군가를 같이 싫어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모 행위다.............략............ 그러므로 에릭이 앨리스의 말에 맞장구치지 않은 것은 에릭의 충심이 변했다는 신호였다.

- 유쾌증 환자들은 수많은 일에서 재미를 찾지만, 단 한 가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들이 관여하는 활동의 성공과 진지함에 매몰되어서, 모순을 인식하는 폭이 좁다. 그들은 바나나껍질을 밟고 넘어지는 사람을 보고 웃지만 자기비하는 꺼리며, 본인의 성격이나 인간 본연의 깊은 결함과 때로 우스꽝스러운 습관을 드러내는 걸 피한다. 

-앨리스도 거대한 기계를 타고 런던에서 바베이도스까지 한나절 만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인정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열광하지는 않았다. 정말 공학이 근본적인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 워싱턴 주 시애틀 시에서 보잉기의 날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집단이며, 그들은 배우자를 속이고, 까탈을 부리고, 질투하고, 경쟁을 벌이고, 불안정하고, 매일 화장실을 가고, 결국 죽는, 고도로 진화한 유인원 집단일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 여행은 흥미롭게도 지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활동으로 읽을 수 있다. - 외적인 여정은 내적으로 욕망하는 여정의 은유다. 네팔에서 히말라야를 오르고, 카리브 해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이런한 것들은 이국적이고 유익하지만, 훨씬 심오한 동기를 가리는 시시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 동기란 여행을 예약하는 자신이 이런 활동을 즐기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나'가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여행이 '나'를 바꿔주리라는 생각이다.

- 풍경이 아무리 근사해도 내면의 꾸밈새, 곧 내적인 지형이 우선했다. 왜 실제 여행 경험은 그토록 기대와 다른지, 섬과 호텔이 훌륭함에도 왜 계속 혼란스러운지 의아한 까닭은, 그녀가 짐을 꾸릴 때 한가지 중요한 것을 두고 오는 걸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탠로션이며 자기계발 책, 비키니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싸면서, 자기 자신까지 챙겨왔기 때문이었다.

- 앨리스는 풍경이 변해도 그것을 보는 눈을 바뀌지 않으리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실제 살아보는 고통없이도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양 미래를 비인격적으로 전망했다. 되돌아보고 그녀는 자신의 빈곤한 상상력에 충격을 받았다.
현재 고민할 거리 중에서 런던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과 직결된 문제들은 빼버리고, 낙원에서도 잠을 못 이루게 하는 ㄴ 일은 차고 넘치리란 것을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날씨와 풍광이 바뀌는 데 희망을 걸었다. 의상과 무대 장치가 호화롭게 변하면 독백 연기가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실력 없는 배우처럼.

- 그곳에는 거부감이나 자기혐오의 반작용으로 사들였지만, 환하고 현실적인 빛 속에서 보면[무언가, 어느 것에라도 돈을 써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누그러지면] 전혀 적당치 않아 보이는 옷들이 쌓여 있었다.

- 꼭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사는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목적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가 어렵게 번 80파운드를 드레스와 수영복에 쏟아부으면서 원했던 것은 꼴같잖게 비싼 옷이 아니었다. 냉소적이도 재능없는 디자이너가 만들고 패션 잡지가 과대 선전해준 옷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그걸 입은 사람의 존재였다. 우스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모델이 입은 옷이 아니라 모델 자체였다. ...................그러나 가진 돈을 다 쏟아 부어서라도 그녀가 갖고 싶은 것은, 아무도 팔 수 없는 것, 바로 그녀가 아닌 다른 존재 였다.

-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이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가능성도 애인이 공감해주는 한도에서만 뻗어나갈 수 있다.

-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우리에게 적당한 자아상을 반사해주는 상대방의 능력에 기초해서. 에릭은 앨리스에게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 어떻게 그것을 알려주는가? 모든 게 머릿속 생각일 뿐인지 실제로도 그런지 모르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 남자와 있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앨리스는 돈을 함부로 쓰고, 지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데 매달리고, 타인을 귀찮게 하는 의타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에릭이 그런 말은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같이 있을 때 그녀 스스로 느끼는 바가 그러했다.

- 따라서 앨리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흥미로운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스스로 아주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결론지었다. 에릭과 같이 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적당한 상대만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리라는 자신감을 잃고,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어할 수 있는 것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

- 에릭은 사람들이 혼자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 그녀가 말하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길로 뻗을 수도 있었을 대화의 문을 닫았다. 그 남자는 그녀가 본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잠재적 가능성을 끌어내지 못했다.

- 행복은 배타적이지만 불행은 끌어안는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표정이 아니라 불행한 표정을 짓고, 명랑함에 수반되는 독립심,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피할 일이다. 불행을 추구하는 일은, 만족한 표정에 함유된 경쟁심을 피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 불평을 표현하는 행동 뒤에는 상대가 잘못을 빌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이 깔려 있을 것이다. 불평은 대화에 대한 믿음을 암시한다. 상처를 입긴 했지만, 이쪽이 화난 것을 상대가 이해해 줄(돌아봐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 앨리스가 자폐적인 기분으로 추락하는 것은 이런 경험을 할 때였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어떤 근거를 들이대며 간청하고 설득해도, 사람들은 결코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확시이 들 때, 그녀는 며칠 동안 어머니에게 말할 수도 있겠고, 그러면 어머니는 생명과 공감의 신호를 보내며 격려하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날 터였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과 다름 없이 노년에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테니까.

- 질투심을 경험하려면 아래 두 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첫째 : 다른 사람에게 간절히 마음을 쓴다는 점
둘째 :[이것은 자존심이 개입되는 부분이다.] 그 사람이 이제는 자신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

- 앨리스는 자신의 모자란 점을 채우고자 사랑했고, 그녀가 갈망했지만 부족했던 자질을 상대에게서 추구했다. 그녀의 감정적인 욕구는, 상대가 가져다준 조각 없이는 불완전한 퍼즐 같았다. 하지만 스스로 발전하면서 빈 공간은 변하고, 열다섯 살에는 딱 맞았던 조강이 서른 살 때는 필요치 않게 된다.
  빈 자리는 윤곽을 다시 그렸고, 퍼즐-사람이 그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그녀는 헤어지거나 곤란을 무릅쓰고 결론을 끌어내고자 했다.

- 고통은 성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함께할 수 있는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길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 에릭이 줄 수 있는 것이 더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런던의 레스토랑을 훤히 아는 것, 우아한 아파트, 사회의 사다리에서 굳건한 지위를 차지한 것, 이런 것들은 그녀도 얻을 수 있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직장에서 성공한 것은, 그녀를 웃게 하거나 친절한 행동으로 놀라게 하는 능력에 비하면 부차적인 요소였다.

-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할 짓을 벌여놓고는 " 하지만 여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란 말을 후렴구로 삼았다. 그녀는 딸을 사랑했고, 화장실 미화원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이 경이롭고 이타적이고 유별난 감정을 안다고 떠벌렸다. 새 남편과 살려고 딸을 전학시키는 마당에, 딸의 몇 안 되는 진정한 관계를 깨버리려고 무슨 짓이든 하는 마당에, 딸의 자신감과 자기존중심을 무너뜨리면서, 어떻게 이런 것들이 사실은 복잡하지만 깊고 진실한 사랑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까?

- 냉소적인 사람은 '너무 많이 바라고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을 뜻했다.
그의 사랑고백은, 앞으로 혼자 밤을 보내야 하고 또 신경질을 부릴 대상이 없어진다는 걸 깨달은 남자의 반응이 아닐까?

- 상실감이 컸지만 그 대상이 에릭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사랑을 시작한 장본인은 에릭이었지만 그 남자는 사랑에 걸맞게 살지 않았다.  그녀는 기대 속에서 상상했을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 기묘하게 향수를 느꼈다. 누군가 그리웠지만, 기억 속을 헤매자니 솔직히 이제는 상실감의 원인을 에릭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 감정을 먼저 이끌어낸 사람이 그 감정에 걸맞게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에릭은 단순히, 그를 만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존재했던,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의 촉매재 아니었을까?

- 그녀의 사랑은 그 남자와 함께 자리잡았지만, 그것이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그 남자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그저 결실을 맺지 못한 약속이 아니었을까? 에릭은 너무 빈곤해서 자신이 끌어낸 감정에 응하지 못했고, 그녀의 욕구를 달래주거나 충족해주지도 못하고 불충분한 채로 남았다. 그 남자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대단히 똑똑한 말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의 가치를 알지만 그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멍청이 같았다........................에릭은 그를 둘러싼 희망사항들이 투사하는 신기루였다.

- 이것은 어떤 사람이 그러하리라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그가 실제로 하는 행동 사이의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였다. 실현하고 싶은 욕구와 실제로 실현된 모습의 뚜렷한 차이.

- "내 일부가 아직도 그이에게 밀착되어 있어."
그날 오후 앨리스는 수지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그리워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 미쳤나봐."
"네가 그리워하는 건 사랑이야." 수지가 한숨처럼 속삭였다.

- 그녀는 감정적으로 너그러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뭐든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었다............흔히 자신을 성숙하게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거부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희생의 '장'으로 여겼다.
  그러니 전혀 어울리지 않거나 진정한 대화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남자들에게도 무한히 집착했다. ..........앨리스는 그들의 정서적으로 눈먼 상태에 저항했고, 친구들 앞에서 울거나 잔인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 데에 남몰래 절망했지만, 더 적절한 상대를 만나는 것은 고집스럽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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