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10. 6. 25. 18:05



가난했다..그리고 외로웠다.
유소년기 그리고 청소년기까지의 나의 상황은 이 두마디로 요약된다.
공부를 잘 했다, 대체로 모범생이었다.
이 두마디로는 나를 요약할 수 있었고..
어쨌거나 그 시간들은 나를 지나쳐 가버렸고 ..
난 이제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하지도 않고, 활발한 대인관계를 맺진 않지만 외롭지도 않다..
또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이건좀;;
뒤늦게야 생각해 보면 나는 내게 주어진 것 이상의 나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가난, 외로움 심지어 학업에 대한 수월성 까지도 내게 주어진 것이지 내가 선택하거나 노력한 건 아니었다.
그땐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에..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면 지나왔지만..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참 대견하게도 나의 상황과 나 자신을 견뎌온 시간이었다.

내 어린 시절을 많이 닮아 있는, 나의 어린시절과 많이 겹쳐 있는...이 소설을 읽고 오랫만에 많이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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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 여우의 신 포도에 관한 우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먹지 못할 것에 대해 적당한 모욕을 날려주고 미련없이 돌아서는 여유

- 무언가를 갖는 것보다 어려운 게 버리는 것이다. 오래 갖고 있었던 것일수록 미련이 돼지비곗살처럼 덕지덕지 붙어서 버리기가 힘들다. 이건 내가 특별히 부석한 결과인데, 갖고 있었떤 것을 함부로 내다버리게 되면 버려진 것들로부터 각종 저주를 받게 된다. 아까움, 심심함, 외로움, 그리움 등이 그 예다.

- 멍청하게도 눈물이 나려고 하는 순간 재빨리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한다. 아, 이 개 같은 눈물- 아, 이 개 같은 눈물-


13세

- 웃는다고 웃었는데 눈가에는 미약한 경련이 일고 입꼬리는 한쪽만 비스듬하게 올라간 모양이다. 남의 마음에 들게 웃기는 너무 어렵다.

- 나는 글자만 보면 그것들이 철사뭉치마냥 뭉쳐져서 내 정수리를 향해 돌격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예전에 딱 한 번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십 년쯤 묵은 된장독에 혀를 담근 기분이었다.

- 나느 글을 너무 솔직하게 쓴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내 글을 읽고 있는 옆자리 짝을 보았을 때는, 꼭 내 살갖이 전부 투명해져서 몸속의 내장을 다 드러낸 채로 대낮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세상은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절대 이루어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주차장처럼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곤 하니까.

- 어른들은 뻔뻔스럽다. 나는 그 뻔뻔스러움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 가게에서 도둑질을 하고 태연스럽게 걸어나오는 단순한 뻔뻔스러움이 아닌, 사람의 마음에 자국을 남기고도 아무렇지 앟게 웃을 수 있는 여유. 진정한 뻔뻔스러움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스스로가 뻔뻔스럽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못할 때 비로소 제대로 뻔뻔스러워 질 수 있는 것이다.

15세

- 무조건 많이 훔치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진짜를 훔치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다.

- 나는 늘어난 티셔츠의 뒷모습을 향해 아버지, 하고 부르지 못했다. 아버지의 등짝이 내 입깁에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젋은 경찰이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제가 보호자인데요."

17세

- 원하지만 결코 갖지 못할 것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지금 내게 그것이 없고 앞으로도 또한 없을 것임을 편히 인정하는 것이다. 허상에 대한 기대와 집착은 서글픈 욕망에 헛바람만 불어넣을 뿐이니까.

- 고등학생이라고 시급 삼천원밖에 안 주면서 사장 행세는 더럽게 한다. 나는 앞치마를 풀어 투포환 던지듯 휘날려버린 뒤 가게를 박차고 나가고픈 충동을 참는다. 대신 솔기가 뜯어진 행주를 박박 빨아 싱크대 위에 얌전히 널어놓는다. 말이 안 통하는 좀팽이들하고 싸움을 벌여봤자 피곤해지는 것은 나뿐이다. 눅눅해진 커피찌꺼기를 쓰레기통에 쏟아버리며, 감정을 지능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을 궁리하기로 한다.

-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상처를 주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내가 상대방에게 의미 있는 존재여야하는데, 그 의미가 버려지는 것을 감수할 만한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 나는 가슴속에 갑각류를 여러 마리 기른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낌새가 보이면, 그 중 한마리가 재빨리 단단한 등껍질을 내밀어 그것을 튕겨낼 준비를 한다. 튕겨내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녀석들은 더욱 단단해진다. 아주, 귀여운 녀석들이다.

- 내가 가끔씩 상처받는 것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이다.

- 사랑은 몸빼바지인가보다. 누구에게 갖다입혀도 촌스러운데, 그래서인지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19세

- 나는 조용히 옥상으로 나와, 내 짧은 열아홉 인생을 샌드백처럼 세웠다 그리고 왜 이렇게 부족한 게 많으냐고 소리치며 어퍼컷을 날렸다. 이어 훅, 잽까지. 그러자 열아홉 인생은 시무룩하게 입을 열었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나는 녀석이 가엾어 졌다. 그래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선 채로 생일의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 불행에게는 틈을 보여선 안 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면역체계가 생기기도 전에 녀석들은 또다시 떼를 지어 덤벼든다. 정 강한 모습으로 견딜 수 없을 때는 도망이라도 가야 한다. 불행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나약한 인간을 가장 좋아하니까.
그날 나는 불행을 겁줄 만한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버지에게 꿀물을 한 잔 타 주었다.

- 나는 줄이 끊어져 내려앉은, 지독하게 무겁고 어두운 천막 속에 갇힌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가슴속에 수만 마리의 새떼가 내 호수를 떠나 계절을 따라 날아간다.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이길 수 없는 것을 굳이 이기려들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며 덤벼드느니 차라리 지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낫다.

- 간절히 원했지만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엄마는 그렇게 조용히 나의 상자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상자는 뚜껑이 닫힌 채 내 가슴 속의 선반 한켠에 놓여졌다.

- 심장이 농구공처럼 타앙, 하고 크게 한 번 튕긴다...........녀석은 뒷목을 긁적이고, 나는 앞머리를 만지작 거린다.  
지우개로 열심히 문질러 놓은 공책 바닥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연필 자국처럼,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분명히 읽히지 않는 말들이 가슴 속에서 흔들거린다.

- 갖고 싶은 것을 갖지 않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열아홉 살의 끄트머리에 선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나 굳이 원하는 것들을 자르고 구겨서 나의 주머니에 맞처 우겨넣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갖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거다.

작가의 말

- 나는 여고생 때 걸핏하면 첫눈에 반했고 혼자 상처받길 잘했다. 아무도 들여다봐주지 않으면 외로워했지만, 또 타인이 나를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촉수를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혼자 가벼운 장난과 농담을 하며 킥킥거리기를 좋아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posted by Dr.Hannah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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