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10. 6. 15. 19:23



나는 아직 전공이 없다. 즉 일반의 이다.
일반의로도 진료를 볼 수 있지만, 아직 이라고 썼듯이 난 전문의가 되고 싶다.
정신과는 내가 5년전부터 전공하고 싶었던 분야이고 두해동안 세번 시험을 봐서 세번 다 떨어진 전공이다.
올 연말에도 또 시험을 볼 생각이다.
몇 개의 법안과 트랜드가 합세하여 근래 정신과는 최고의 인기과가 되었다.
내리 두해를 떨어지고 나니 올해도 정신과라는 말은 감히 못하겠다.
로컬에서의 시간은...
이곳이 아니라면 몰랐었을 일들, 못만났을 사람들, 배우지 못했을 내면의 성장을 주긴 했지만..
숨막히게 꽉짜여 돌아가는 종합병원에서의 시간이 이제는 그립다.
그리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밀려들어오는 새로운 지식에 쫓기고 치여 어느새 돌아보면 훌쩍 자란 내모습을 볼수 있는 그런 경험을 다시하고 싶다는 생각도 크다.(레지던트인 친구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후후..)

그저 그런 내신, 그저 그런 인턴 점수..
조금은 고지식하게 생긴 외모와 박력이 떨어지는 말발..
외과계열과 비임상파트를 제외하고 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과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그리고..참 바보같게도..
난 아직 정신과가 제일 많이 하고 싶다.

골칫거리들의 집합소라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겐 그리움이고 안쓰러움이다.
무작정하고 감상적이 되는 것은 의사로서는 오히려 위험스런 일이지만,
측은함이 없이는 환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내게 당신의 얘기를 해주세요 라고 거침없이 말 해놓고도 서로가 머쓱해 하지 않을 공간을 꿈꾸기에 아직도 나의 정신과에 대한 바램은 진행형일 것이다.

==========================================================================

서문

- 종종 순수한 과학의 승리라고 묘사되는 사건에 사실상 문화와 상업성이 어떻게 침투해 들어갔는지를 묘사하는 사회적 역사를 쓰려고 한다.

- 어떤 행동이 "미친" 것인지 명기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정신의학은 분명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의 기준을 규정하는 규칙 제조 분야이다. 그러나 정신병의 경우는 어떠할까? 정신병은 젠더, 계급 등과는 무관한 엄연한 현실이며, 과학적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설명되고 치료되고 그 지형이 그려진다.


Chapter 1  정신의학의 탄생
  
정신과가 없던 시절, 광인들은 집에 묶여 있거나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혹은 호스피스 등에 치매, 걸인, 부랑자들과 뒤섞여 감금되었다. 19세기 비로소 정신병자 수용소가 탄생하면서 정신의학은 비로소 독립된 전문분과로서 첫발은 뗀다. 계몽주의 희망의 물결을 타고 치료적 수용소의 꿈이 시작된 것이다.


- 의사들은 용기와 힘을 가져야한다. 모든 사람이 의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의사란 어떤 특성을 가지도록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고, 그 특성이란 인간성의 파괴를 온몸으로 막아 내는 것이다. 원칙이 훼손되는 것을 보면 의사들은 행동으로 이를 가로막아야 한다.                      <레일, 1803>

- 상냥함과 지극한 솔직함만이 환자의 내밀한 생각에 다가갈 수 잇고 불안을 잠재울 수 있으며,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남과 비교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갈등을 다룰 수 있다     <피넬 1801>

- 해스럼은, 환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다만  "온화한 태도와 표현, 환자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환자의 말을 믿어 주는 듯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환자 관계에서 바람직안 의사의 자질을 이만큼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 정신의학은 탄생 시초부터 신경과학이라는 한쪽 날개와, 정신사회적 관점이라는 다른쪽 날개로 비상을 시작했다.


Chapter 2  수용소의 시대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치료적 수용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구속과 사슬이 없어지고 광란의 울부짖음도 사라지는 그 즈음 수용소는 몰락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초만원으로 변하는 수용소에서, 의사들은 밀려오는 환자들에 짓눌린다.

- 수용소의 창궐은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 어떻게 참담한 결과로 끝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  쾌적한 장소, 직원들 마음속에 있는 진보적이고도 신뢰할 만한 정신, 의사들의 열의, 치료설비의 풍부함, 제반 분위기..이 모든 것들이 샤렝통 환자들의 치료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의미하던 '치료할 수 있음'이라는 말은 오직 샤렝통에서만 가능했다는 말이 되겠다. 진보 정신이 더 이상 퍼져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략..........관료조직의 무기력함과 정치적 저항은 에스퀴롤의 이념이 86개 현으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했다. 

- " 요양원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는 처벌에 대한 공포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 원리는...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광인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병적속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 "마음이 강해지고 자기억제라는 건강한 습관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경험에 의하면, 광기를 치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수단이다."       <새뮤얼 튜크> 

- 급성 환자와는 증상을 두고 언쟁하지 말 것이며, 친근하고 달래는 목소리로 고통을 안정시켜 주면 때로
빨리 회복되는 수가 있다.          <버로우스의 도덕치료 지침 중>

- 정신질환 중 어떤 것은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정한 수를 유지했고, 어떤 병은 그렇지 않다. 이들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광인이니, 정신이상이니 심란한 자이니 말하는 것은 광인이라고 붙여 놓은 라벨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 라벨을 벗겨 보려는 노력을 애초부터 포기한 것과 다를바 없다.

- " 정신의학은 의학의 의붓자식일세."
왜냐하면 정신의학은 아무것도 평가하지 못하고 측정하지도 못해서 자연과학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 그리고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네. 그저 사람마다 다소간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략.............정신의학을 하면 자네는 수용소에 고립되어 점점 희미한 존재가 될고 말 걸세. 정신과 의사는 치료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치료해야 하고 그래서 매일같이 이런 모욕을 꿀꺽 삼켜야만 한다네.."                             <카를 융이 제자에게>


Chapter 3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탄생

19세기 과학혁명의 물결은 틀이 잡혀 가던 정신의학에도 흘러 들어왔다. 1세대 생물정신의학자들은 정신질환이 운명이 아니라 뇌의 질환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빈약한 근거와 퇴행이론 등은 자가 당착에 빠지고 정치적으로 악용된다. 그 뒤를 이어 크레펠린의 기술 정신의학 시대가 시작된다.

- 마이어가 도착해서 본 캔커키의 "병원 의사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절어 절망적으로 침체되어 있으면서도 그 생활에 완벽하게 만족하고 사는 곳"이었다.
 
- 19세기 마지막 4분기 동안 정신의학의 학문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단지 토론의 대상이던 퇴행이론이 거리로 나와 관심의 초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사상이든 후유증을 낳을 수 있음을 (그리고 의사들은 대중에게 공표하기 전에 자신들이 믿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신중히 재고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이 과정에서, 대중은 퇴행이론으로 다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 나치가 유전론을 악용함으로서 1945년 이후로도 오랫동안 유전에 관한 토론을 금기 사항이 되어왔다. 중류층 지식인들에게는 유전과 퇴행이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 종적 시각이란 어느 한 시점에 나타난 환자의 문제를 환자의 삶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전의 신경학적 소견을 뇌 부검 소견으로 해석하려는 생물학적 시각과 대조되낟. 

- 관찰에 의해 사실을 축적하던 크레펠린의 방식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주요 정신질환을 이해하는데에 가장 중대한 통찰을 제공했다. 크레펠린 방식이란, 정신병에는 각기 다른 몇 가지 근본적 유형이 있다는 것, 이들은 서로 다른 질병 경과를 밟는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례를 모아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서 질병이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정신 질환의 종말은 어떠할까? 정신질환이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 환자의 꿈에서부터 뇌 구조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정신의학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마음에 품과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심리학도, 신경해부학돠 아닌, 환자의 질병이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정신질환의 귀추를 지켜보는 것, 이 귀추에 근거해서 질병을 감별하는 것이 크레펠린주의적 대변혁의 본질이었다.

- 증상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원인(신경매독, 갑상선 장애 등등), 경과, 최종상태에 대한 근거를 기술하지 않으면 그 기록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Chapter 4  신경성 질환의 시대

혐오의 대상이 된 정신의학, 하지만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환자와 대중의 혐오를 피하고 부자 환자를 유치하려는 의사는 '신경성'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신경성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온갖 치료법이 난무하던 이 시기 드디어 심리적 치료의 싹이 튼다.

- 오늘날 환자에게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말해 주는 것과 같은 종류의, 말하자면 일종의 기만이 당시에 왜 필요했던 것일까? 의사들은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줘야 한다는 중압감을 항상 느껴왔고, 특히 정신과 의사의 경우 치료효과가 좋을 것처럼 낙관적 태도를 취해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1911년에 버나드 쇼가 의사-환자 관계에 대하여 말했던 것은 반드시 정신과 의사를 지칭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 경우 아주 적절하다. 

 병원 안에 있는 직원들 중 그 누구보다도 더 환자를 기쁘게 해주며 살아가야 할 의사는, 진찰하면서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품위있는 놋쇠 문패도 달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술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물만 마시라고 처방하고, 알코올중독자에게는 브랜디나 샴페인 젤리를, 스테이크를 비만한 자에게, 혹은 "무요산" 채식성 음식을 정반대로 처방하거나, 늙은 대령에게 창문도 닫고 난로에는 불을 지피고 무거운 코트를 입으라고 권하거나,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에게는 품위를 지키도록 조금만 노출하고 밖에 나가라고 권하면서도, 한번도 감히 "잘 모르겠습니다." 혹은 "제 생각은 다릅니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곧 발견하게 된다. 

- 의사 -환자 관계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환자의 삶에 대해 "친밀하게 아는 것"이 치료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포렐>

- 데제린의 격리치료는 통상적으로는 돈이 많이 드는 미첼 식의 휴식치료를 개인 클리닉이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 준 시도였다.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데제린 치료법의 성공비결은 휴식치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였던 그의 진료방식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히스테리 병동 회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내가 도입한 정신치료적 방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는데, 그저 단호하고도 자애로운 훈계와 함께 논리적으로 환자를 설득하는 것뿐이다. 아침 회진 때면 환자 한사람마다 간밤에 어떠했냐고 묻는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환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대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끈질기게 설명한다. 그리고 환자의 대답에 확신이 들어있음을 느낄 때까지 그 환자 옆에 있다가, 다음 환자에겍로 건너갔다. "

- "데제린은 가난하고 초라한 재봉사 혹은 지붕 수리공의 침대맡에 앉아서 이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가족간의 다툼, 임금 받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아이가 이가 나려고 보채는 바람에 밤을 샜던 얘기 등등을 주의 깊게 다 들었다. 그는 공감어린 감정적 반응을 환자에게 거리낌 없이 드러내었다. 그는 관대하고 익살맞은 아버지였고 병원은 그가 훈련시킨 간호사들이 있는 포용하는 어머니였다. "                      <젤리프>

- 신경과 의사들은 이제 신경증 환자의 환경 교육정도, 성격, 기질과 사회적 조건의 중요성과 이들이 가진 주관적 느낌을 다루지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략.....대너는 결론짓기를 "신경과 의사는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보다 더 높은 이상과 더 강한 자제력, 그리고 삶의 지혜와 더 넓은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과대 망상적 발언을 해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과 의사들이 추구하던 바로 그 역할 이기 때문이다.

- 정신치료가 확산되던 그 초기에 정신의학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광기"에 관한 교조적 이론이 환자들을 정신과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온갖 증상에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신경성"이라는 용어가 환자로 하여금 신경과 의사와 내과의사에게 달려가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즈음 서구 세계 어디에서나 정신의학은 의학의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고 변방에 머물러 있었고 인간사의 불행과 슬픔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Chapter 5  정신분석, 그리고 정신의학의 단절

각종 요법이 성행하던 시기에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고안해 내어 부르주아 계층의 자기성찰 욕구를 채워 주게 된다. 프로이트의 추종자들은 정신분석을 치료에 적용하고, 더 나아가 운동의 차원으로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 수세기 동안 정식과 의사들은 이 질병이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를 정신의학의 소유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했던 특별한 이유는,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의 존재 공간을 수용소에서 개인 진료소로 이동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 환자는 의사로부터 지속적인 돌봄과 친밀함을 기대한다.
   정신분석의 원칙은 이들 환자를 진료하던 가정의, 신경과 의사 등 신체를 진료하던 의사들의 행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잇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의사들이 사용하던 온갖 위약 치료법들 (예를 들어 수치료법, 전기치료, 식이요법 등)이 환자에게 충분히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정신분석은 그 특성상 의사와 환자가 자기 탐색이라는 과정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환자는 자신이 정서적 돌봄을 받고 있다는 암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의사-환자의 만남에 존재하는 정서적 간격을 채워주는 특성을 갖고 있었기에 초기에 그렇듯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정신분석은 환자가 배려 받고 있다는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는 의사 환자 관계를 제공했던 것이다. 

- 막판에 정신분석이 승리하게 된 이유는 프로이트 이론이 탄탄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 의원들이 번성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 중앙유럽 정신의학계에서 정신분석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세방향으로부터 일어났다.
첫째, 의사 환자 관계에서 심리적 측면에 더 섬세하게 반응하기 위해서
둘째, 개원가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끝으로 공공의료 분야에서 정신분석을 도입하려 했던 이유는 치료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 였다. 
신경증의 심리 치료 방식을 흡수할 경우 정신의학의 범위가 얼마나 넓어지게 될 것인자 의사들이 깨닫게 되면서 각기 세 방향으로부터 정신분석이 유입되어 비로소 진료소에 바탕을 둔 정신의학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 당시 정신의학은 "좋은"환자와 "나쁜" 환자를 구별했다.  좋은 환자는 비교적 젊고, 매우 지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교육을 받은 중류층 사람을 뜻했다. 나쁜 환자란 중증, 만성적 무능상태로, 정신분열증, 중독, 그리고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환자가 분석치료에 적합한 사람이어야 좋은 환자라는 것이지요. 치료가 환자에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반 프라그와 같이 사려 깊은 의사에게 정신의학은 의학의 모조품이자 수치거리였던 것이다.



Chapter 6  대안을 찾아

정신분석과 수용소 라는 두 갈림길 사이에서 어느쪽으로도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정신과 의사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신경매독의 열치료법과 수면연장법 등은 약물혁명을 예고했는가 하면, 전기충격요법과 뇌엽절제술은 격렬한 반정신의학 운동을 야기했다. 반면 정신치료의 새로운 비전의 밑바탕이 된 낮병운과 치료공동체가 등장한다.
 
-  20세기 전반, 정신의학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환자가 저절로 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거대한 수용소 건물에 환자를 가둬 놓고 있던 한편, 다른 곳에서는 정신분석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부자들의 자기 성찰 욕구에 맞는 것일 뿐 진짜 정신질환에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 1934년 사켈은 첫 번째 성과를 방송으로 알렸다.  즉 인슐린으로 저혈당을 유도하여 인슐린 혼수에 빠뜨린 결과, 증상이 놀라울 만큼 완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략................
그러나 사켈의 성과는 대학 클리닉 이외의 곳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었고, 사켈은 사기꾼인 데다가 푀츨이 그를 후원한다는 게 미스테리라고 조롱을 했다.............략..........정신분석이 지배하던 미국 정신의학 협회에서는 처음에 그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나중에 <뉴욕타임스>의 과학부 기자가 사켈의 성과에 관심을 촉구하자 겨우 그를 받아들였는데 돌아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사켈은 자신이 명예와 선취권을 방어하는 데 온 생애를 보내다가 1957년 사망하였다.

- 정신분석가들은 수용소 정신과 의사들을 가난한 시골뜨기 사촌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이 시골뜨기 사촌들은 환자를 감금하고 관리하는 것에 불과했던 관리보호주의의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하고자, 그리고 의학의 본류에 다가가고자 인슐린 혼수요법을 그러잡았던 것이다.

- 한 은퇴한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ECT가 없었더라면 나는 정신과 의사를 계속해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경련치료가 없었더라면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가지고 있는 처참함과 치유할 수 없다는 절망을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 ECT는 정신분석을 진퇴양난의 궁지로 몰아넣었다. 주요우울증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을 정신분석 이론으로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련의 입장에서는, 정신치료가로 수련을 받고 많은 환자를 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개업 의사가 된던가, 아니면 박복의 정신병원 의사가 되어 ECT를 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 영국이 전 세계에 내놓을 만한 것은, 정신질환의 기저에는 인간관계의 폐해가 깔려 있다는 이론이었다. 만일 정신병과 신경증이 잘못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건강한 인간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치료가 될 것이다.

- 뇌엽절제술은 수용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장 낫기 어렵고 또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했어야 했다. 그리하여 다른 어떤 물리적 치료법보다도 이 수술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어두운 불안을 드리우고 있었고, 그리하여 새 약물이 등장하자마자 제일 먼저 폐기했던 것이다.  

- 치료적 공동체는 한쪽 극단인 정신분석과 다른쪽 극단인 수용소 보호 관리주의 사시에서 균현을 취하고자 했던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 노스필드는 모든 스태프와 환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정서적 관계로 이루어진 (의학적으로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라) 치료적 환경이다. 진심이 병동 운영의 기반이다.                     <메인>

- 치료공동체의 원리는 환자에게 권한을 주는 것, 정상적으로 생활하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병을 일으킨 나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 치료는 환자가 처해 있는 전반적 사회적 환경과 환자가 맺고 있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환자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지역사회의 일부로서 대우받아야 한다     <비어러>

- 미국식 "지역사회 정신의학"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고, 수용소에 있던 무능한 환자들을 대거 사회로 내보내 세상의 거친 풍파에 내던져 지게 했던 것이다. .......략....법령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건강 센터는 지역사회로 하여금 정신병 환자를 돌보게 한 것이 아니라 중류층 신경증 환자에게 정신치료를 제공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 반세기 동안 정신의학은 보호관리주의와 개인 정신분석 사이에서 덫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었다. 덫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찾던 중 브로마이드 수면요법에서부터 ECT 그리고 사회적 모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요법들로 정신의학을 이리저리 땜질하며 겨우 지탱하게 해주었다.
  이들 대안요법에는 충돌하는 패러다임도 없었고, 이론적 논쟁도 없었다. 의사가 하루는 사이코드라마를 지시하고 이튿날은 ECT를 시행하는 식이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일상의 진료에서 (가난한 환자에게) 수용소 관리를 할 것인지, (부자 환자에게) 정신분석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갈등적 상황에서 극도로 절망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 효과가 확실한 정신약물이 등장하고 정신질환이란 단순히 인간관계의 문제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정신분열증을 만드는 어머니 따위의 이론보다 훨씬 더 깊숙이 생물학적 현상과 관련된다는 근거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20세기 첫 반세기 동안 등장했던 내안 요법들은 이차 생물정신의학의 도래와 함께 거의 대부분 치료법 목록에서 지워져 버렸다.


Chapter 7  생물정신의학의 부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의학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게 된다. 정신질환의 후천적 원인을 주장하는 정신분석 진영과, 유전적, 뇌화학적 요인 등 기질적 원인을 주장하는 진영, 그리고 그 사이의 절충적 시각이 혼재하는 과도기적 시기가 다가온다.

- 정신치료가 생물학적 패러다임에서도 일부를 차지하지만, 그것은  단지 특정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의사 환자 사이의 본질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지, 무의식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발레 안무 짜듯 정교하게 쌓아 올린 정신분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 1차 생물정신의학은 .....통계적으로 무지했고, 대조집단과 비교함으로서 균형있는 시각으로 보려 하기보다는 일화적 사례에 의존했다. 

- 2차 생물정신의학의 선각자들은 양적 자료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정신분열증과 비교할 대조군으로 우울증환자를 선택했다. 또한 자료를 수집할 때 가정환경의 영향을 배제해야 함도 알고 있었다.

- 19세기의 통계는 가정환경과 유전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환경의 영향을 배제한 유전성을 확인하려면 쌍둥이 연구와 입양아 연구, 이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 "아이들이 한 가정에서 성장한다하더라도 아이들마다 환경으로 받는 영향은 다르다.".........
환경의 영향에 포함되는 것은 가정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세틸콜닌(Acetylcholine) ; 근육에 신경정보를 전달하는 물질로서 자율신경계와 운동신경에 존재한다. 중추신경계에서는 각성, 집중력, 보상체계 등에 관여하며 결핍시 기억장애,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와 연관된다. 최초로 발견된 신경전달 물질로서 이를 발견한 오토 뢰비는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 

- 여기서 지적하려는 것은, 레만과 같은 연구자들이 환자에게 비인간적인 실험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약이 비록 정신병의 원인을 제거해 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정신병의 주요 증상을 제거해 줌으로써 잠재성 정신분열증 환자도 수용소에 갇혀 있지 않고 비교적 정상적 생활을 꾸려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클로르프로마진의 뒤를 이어, 각종 항정신증 약물, 항조증약, 항우울제 등 정말 풍요롭게 온갖 약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사회복지사업 정도의 수준에 머물던 정신의학을 가장 정밀한 약물 지식을 가진 전문분야로 발전시켰다. 

- 어떤 것은 나도 한번 끼어보자는 식으로 단지 경쟁을 위해 시장에 나온 약도 있었고, 어떤 약은 독성이 발견되어 축출되기도 했으며, 어떤 약은 정신의학 영역을 벗어나 길거리 암시장의 남용대상이 되기도 했다.  

- 새로운 약물 요법은 포스트와 동시대에 살던 정신과 의사들의 경험을 완전히 바꾸어 준 것이다. 
 
" 나는 고립된 시골에서 홀로 의사생활을 시작했고, 조금도 나아질 가망이 전무한 채 한없이 피폐해 가는 수많은 환자를 보며 손써볼 방법을 하나도 가지지 못한 채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결국 정신과 의사들 전문인 그룹에 들어와서야 내가 의사로서 내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 광기는 질병 그 이외늬 것이 아니다. 오직 의학적 치료만이 그 병을 이길 수 있다.       <레흐>

- 뇌와 마음 질병의 정체를 밝히고 병든 곳을 치료하는 도구로 약이 기능할 수 있다는 이 말에는 정신약물학의 본질이 담겨있다.

- 클로르프로마진과 초기 향정신성 약물이 발견되면서 정신약물학은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다. "생리학적 메스" 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 하나의 신경전달물질-하나의 질병 이론은 꽤 논리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제약회사가 마케팅하기에도 매우 편리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연관성이 인과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 좌파 작가들은 정신의학에 "부르주아 계급"의 통제 의지가 숨겨져 있다고 보았고, 카를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주식과 채권을 소유한 중상류층이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이었다. 여성주의 작가들은 남자 정신과 의사들이 가부장제 권력을 여성에게 주입하기 위해 남성 젠더를 대표하는 중개인이라고 했다. 

- 수용소에서 고프먼이 본 상황은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으며, 수용소란 일종의 "전체기관total institution " 으로서 환자를 유아화시키고 삶을 제한하는 폐쇄적 제도라고 해석했다.
"정신병원의 구조적 배열은 의사와 정신과 환자 사이에 극명한 차별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고프먼에 따르면, "입원하면서부터 환자는 영락, 강등, 모욕과 모독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략....................................
고프먼의 주장은 많은 부분 정당하기는 하지만, 그 기저에는 정신질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치료하겠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부끄러움도 없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 1966년 사타바바라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회학자 토머스 쉐프는 소위 정신질환자라고 불리는 사람의 실제 문제는 "낙인찍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에 따른면 "가장 만성적인 정신질환자일지라도 부분적으로나마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을 한다." "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그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에 가장 중요한 결정인자로 작용한다. "............략..........그러므로 정신질환이라는 진단명으로 그 개인을 설명할 수 없으며, 도리어 사회제도가 일탈을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해석 방식에 대해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과 의사 세뮤얼 구제는 "정신과 환자와 함께 평생을 보낸 우리 의사들은 물론, 심지어 환자의 가족들까지도 '낙인찍기 이론'은 근본적으로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수세기 전 윌리엄 화이트가 묘사했듯이, 친절하지만 가부장적인 감독관과 가족 같은 직원이 있는 그런 안식의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정신병원에서 가장 통렬한 장면(그가 수용소를 방문할 때마다 본 것이다)은 의사가 뜀박질하듯 서두르며 병동을 회진할 때 환자가 겁먹은 채 소심하게 의사의 팔이나 가운을 잡아끄는 장면이었다. " 

"선생님, 잠깐만 뵐 수 있을까요? "
그 대답은 항상 "미안, 다음에, 다음에."
어는 의사가 절망적인 어투로 말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고? 환자 한 사람마다 개인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그런데 내 담당환작 500명이나 되니 뭘 해줄 수 있을 것 같소?"

- 환자들을 따뜻이 받아들여야 했을 지역사회 구조는 요양원과 하숙집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
"도움 받을 길조차 없는 이들 거리의 사람들은 옷가지나 담배 혹은 술 한 병을 찾는 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였다."................"그들은 개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강요받은 토끼들입니다."

- 수십 년 만에 미국으로 온 한 영국 정신과 의사는, 탈기관화는 결국은 "퇴원해서 지옥에나  떨어져라" 식의 정치였다고 말했다.
" 내가 1950년대 초에 방문했을 때 비록 여러 모로 부적당하긴 했지만 최소한 그들은 집이 있었고, 비록 돌봄의 기준이 최상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돌봐지고는 잇었다. 그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수용소를 나온 이들 불행한 환자들은 만성 질병을 가지고 있고 도움 받을 길도 없어서 이제 싸구려 숙박소나 감옥, 혹은 길바닥 생활 이외의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끝없이 악화되어 갈 것이다. "

- 궁극적으로 볼 때 반정신의학 운동은 결국 실패했다. 지역사회 정신의학은 비록 그 기본정신은 의미 있는 것이었으나, 심각한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실질적 수단으로서는 신용을 잃었고, 지역사회에서도 호응하지 않았으며 지역사회 안에서 치유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 그들이 추론하기에, 쇼크치료법의 주된 장점은 "자기통제가 안 되던 환자로 하여금 다시 통제력을 찾게 해주고 그럼으로써 환자가 치료적 관계를 맺도록 하는 데 있다."
 


Chapter 8  프로이트에서 프로작으로 

새로운 약물은 거대한 수용소에 있던 환자를 사회로 쏟아 내는 탈기관화 현상을 재촉했다. 그러나 무방비 상태로 지역사회에 돌아온 환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응에 실패하고, 지역사회 정신의학 또한 실패한다.  온 세계를 휩쓸던 정신분석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약 회사의 주도로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약물이 대중의 욕구를 채워 주게 된 것이다. 이 변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항우울제 프로작이었다.

- 그러나 희망은 아직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도리어 정신의학은 대중의 요구에 좌우되고 기업의 가치관에 발목 잡혔으며, 소위 과학주의에 기반을 두었다는 질병 분류체계의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주요정신질환 분야에서만큼은 1970년대 이후 신경과학이라는 이름의 고속도로를 달려왔으나, 일상의 고통을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데에서는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 일상의 세계에서는 유전학의 발자국도 희미해지고 신경전달물질은 증발해 버린다. 생물학의 무게는 줄어들고, 대신 사회 문화의 비중은 높아진다. 신경성 질환 영역에서만도 수없이 많은 진단명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있는 것은 서너가지 혹은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일상의 세계에서 정신의학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병리성과 특이성 사이의 구별조차 애매하다.

- 20세기 들어 정신의학이 당면한 가장 핵심적 문제는 스트레스를 심리화 하려는 대중의 새로운 경향에서 비롯되었다. 정신의학이 예전에 신경성 증상을 의료화했던 상황과도 다르고, 스트레스를 계급이나 젠더 문제 차원으로 사회화했던 것과 또다른 경향이기 때문이다.

- 의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정신의학은 심리학이나 사회사업 같은 비의학적 상담에 패배해 버렸다.
스트레스 받는 자아라는 인식이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게 되자 스트레스와 연관된 병을 취급하던 전문분야인 정신의학은 더욱 위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 신경과 의사들의 이색적 치료법에 불과했던 정신치료가 불과 100년 만에 실질적으로 국가적 차원의 기분 전환 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 이렇듯 심리적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경악하리만큼 증가하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첫째, 사람들이 질환이라고 간주하는 질환역치가 낮아짐으로서 심리적 불편함의 총량이 증가했다. 이 역치를 낮추는 데 정신의학은 분명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둘째 질환이 아닌 일상적 스트레스와 삶의 문젯거리를 의사에게 상담하려는 경향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 정신치료가 개인적 스트레스를 다루기 시작하자 환자들은 정신과의 경계를 넘어 심리학자, 정신과 사회사업가, 그리고 소위 "정신건강 관리자" 라는 다른 서비스 종사자에게까지 흘러 들어가게 된다. 진료실에서 정신치료로 수입을 유지하던 정신과 의사에게 이런 식의 환자 유출은 정신과 비지니스에 경계 경보를 울리게 되었다.

-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평범한 문제를 부모들로 하여금 질병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해 온 정신과 의사들의 태도인 것이다.

- 모든 정서장애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제가 우울증 진단을 증폭시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의사들은 치료할 수 없는 진단명보다는 치료 가능한 진단명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 남에게 골칫거리가 되는 사람을 환자로 만든다는 것은 비록 골칫거리였다 하더라도 실은 극히 정상적 상태를 병리화했음을 의미하낟. 따라서 성격장애를 포함하여 정신과 질병이라고 표식이 붙게 된 상태는 어느 수준 이상이어야 질병으로 간주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인 질병역치가 매우 낮아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 여태까지 정신의학은 병의 판단 기준을 꾸준히 오른쪽으로 밀어내 왔고, 그래서 희귀한 병적 상태는 물론 일상적 불편함까지 모든 것을 정신과의 진료대상으로 포섭해 왔다. 즉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 인간조건이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비를 지불하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 정신치료분야에서 그의 아이디어는 다음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신은 할 수 있다. 당신은 멋지고 착한 사람이며, 당신안에 모든 것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기분만 좋아진다면 문제될 게 뭐가 있겠는가!"

- 반면 정신치료를 요구하던 사람들은 삶에 불만을 가진 불행한 사람들이었고, 그렇다고 정신질환이라고 진달될 만한 우울, 불안, 강박적 행동 등의 증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정신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진짜 정신 질환자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 누구나 다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몇몇만 질병을 가지고 있다.                              <대니얼 프리드먼>

-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받는 수련 내용과 수련을 끝내고 사회에 나왔을 때 해야 할 일이 현저히 달랐던 것이다. 수련의로서는 주요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거나 아니면 주요정신질환 환자보다 더 큰 수익을 올려주는 신경증 환자들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 정신의학이 취한 방향은 정신으학의 본질인 주요 정신질환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길이었다. .........골치아픈 일상사를  무마하기 위해 정신치료를 받으려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 할지라도 정신의학은 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정신의학이 경쟁자들과 뚜렷이 구별될 수 잇는 길은 신경과학에 정통하는 것이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가 아닌 사람들과 낯붉히며 씨름하는 것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도움이 되기 보다는 대중 앞에서 정신의학의 명예를 끌어내리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미국의사의 69%가 정신 분열증이락 진단한 데 비하여, 영국의사는 단 2%만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식의 국가 간 차이를 보고 의사들은 당황했다. 왜냐하면 이 결과가 암시하는 것은 정신의학은 과학적 정밀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국가의 문화적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이며, 그렇다면 정신과는 의학이라기 보다는 민속학에 불과해지기 때문이었다.

- 전쟁은 정신병이라는 진단명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뭇 다른 부류의 환자들을 양산해 냄으로서 정신의학에 도전으로 다가오게 된다. 평상시에는 눈에 띄지않던 소소한 성격문제가 군에서는 중대한 일이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분류법은 모든 곳에 필요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진단체계가 계속 만들어지고 정신과 병명은 늘어만 갔다.

- 그 당시 스피처는 정신과 진단을 전면적으로 새로운 방향에서 재조명하여 실재하는 질병의 실체에 가능한한 가장 가까운 진단명을 만들고자 결심했다.

- 우디앨런 증후군  ; 우디앨런은 미국의 극작가 영화감독 등등의 다양한 예능인이다. 만사에 대한 불만을 뛰어난 블랙 코미디 작품으로 표현하나 본인이 말할 때에는 박학다식함에도 불구하고 우물거리며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자신의 수양달과의 결혼에 대해 자신이 오랫동안 받았던 정신분석 이론을 거론하며 합리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빗대어 인생에 불만을 가진 자신없는 태도의 어중간한 수준의 지식인을 의미한다.

- PTSD가 DSM-3에 포함된 이유는 핵심적 역할을 한 정신과 의사들과 차전 군인이 그 병명을 DSM에 포괄시키고자 수년동안 의식적으로, 그리고 매우 의도적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했고,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들이 반대자드보다는 좀더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더욱 정치적 적극성을 가지고 있었고, 호기를 잡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 분석이 아니라며 다른 그 무엇으로 정신치료를 할 것인가? 대안적 정신치료로 대두된 다른 방식 거의 모두가 효과 면에서는 비슷비슷했다. 대인관계 치료든, 그룹치료  든,  가족치료든, 사이코드라마든, 최면술이든, 마취치료법이든 무엇을 선택해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심리학자 한스 아이젱크가 지적했듯이,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비교한 결과 그 어떤 치료법도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 수백만의 미국인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망각하고......경제구조 맨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유복한 환자의 안영을 돌보는 전물가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살았다. ...........그래서 의사가 "관심을 가질 만한" 환자만 입원시키던 관행을 폐지하고, 맨해튼의 워싱턴 하이트 구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병원의 문호를  개방할 것을 지시하자, 입원 환자의 인구 구성이 극적으로 변화된다......모든 계층이입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 달리 말하면 삶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이 2세기 전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이제는 수많은 방식 중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은 그 많은 것 중 하나에 불과했다. 

- 집중적 정신치료는 여태까지 대조군 대비연구에 의하여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반면, 약물 효과에 대한 검사는 증명이 되었다는 것과, 대조군 대비 검사가 과학의 궁극적 표준이라는 것이었다. 


- 연속성 이론, 즉 정신병 환자가 나타내는 불안은 가벼운 질환의 불안보다 더 심하게 많이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연속성 이론은 옳지 않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둘 사이에는 폐렴과 감기 사이의 관계처럼 생리적 불연속성이 있게 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정신질환이란 건강함에서 신경증으로 그리고 신경증에서 정신증으로 이행하는 연속선상에 있는 질병들이 아니고, 단지 정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제각기 다른 독립된 질병실체가 있다는 말이다.

- 미용 정신 약물학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치료가 아니라 심리적 상태의 개선 혹은 미용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로 신조된 용어이다.

- 진료실에서는 공감어린 관계를 조성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 더욱 궁극적인 치료 목적일 것이다.

- 새로운 약이 야기한 문제점은, 이러한 약이 20세기 말에 이르러 너무나 유행하게 되자, 환자들이 보기에 의사는 의사 환자 관계를 치료적으로 사용하여 상담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신기한 약을 전달해 주는 사람으로만 간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최근에 와서는 의사와의 상담은 오직 환자 자신의 이미 선택해 놓은 약을 처방받기 위한 것이며, 자시느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오직 약 뿐이라고 생각한다.

- 제약회사마다 경쟁적으로 향정신성 약물 개방에 뛰어들게 되자 이들은 정신과 의사의 진단 감각을 왜곡시키기에 이르렀다. 파고들 만한 틈새시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제약 회사들은 질병 범주를 부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상태를 질병이라고 명명했다 하더라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질병이, 제약회사가 치료약을 개발해 내놓게 된면 가히 유행성 전염병처럼 곧바로 대중성을 획득하게 된다.

- 의학분야에서는 여태까지 흔히 보아 왔듯이, 치료방법이 개발되면 그 질병의 존재를 알아채기 쉬원진다.
                                       <데이비드 할리>

- 쿤이 말한 과학주의란,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곤란을 우울증으로 명명하여 질병으로 전환시켜 버림으로써, 인생사를 우울증이라는 척도로 측량하고 이 모든 것은 '기적의 약'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신과 스스로가 제약회사에 대거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과학의 한 분야인 정신의학은 약물 쾌락주의라는 대중문화를 양성하게 되었고, 정신질환에 걸리지도 않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약을 갈구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약을 먹으면 자의식의 무거움을 떨쳐버릴 수 있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200여 년의 기간 동안 정신과 의사의 역할은 치료적 수용소의 치유자에서부터 프로작 처방의 문지기로까지 변화되어 왔다.

- 마음의 병이 다른 의학적 질병과 다를 바가 없다면,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대두된다. 누가 정신과 의사를 필요로 할 것인가? 

- 이제 정신의학 자체가 의료화되었으니 독립적인 전문분야라고 정당화할 근거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더욱이 심리학자와 사회사업가들이 집중적으로 정신치료사 훈련을 받음으로서 정신치료는 그들에게 옮겨갈 것이고, 뇌 생물학 분야는 뇌 영상촬영 결과와 뇌 기저핵 병소를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신경과 의사에게 점유될 가능성이 크다. 정신과 의사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인가?

- 약물치료에 의한 생물학적 증상 개선과 환자의 왜곡된 인지 심리상태에 공감해 주는 의사와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상승효과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의사이다. 심리학자나 사회사업가의 정신치료 기술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의 역사를 보면,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다름 아닌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치료 효과에 대한 환자의 기대감은 더 커졌다.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단순히 친구나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존경할 수 있는 의사라면 심중을 토로하면서 얻는 카타르시스는 더 클 것이다. 

- 고통받는 인간은 치유자의 모습으로 동정을 보이는 사람의 말에 반응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정신과에 아직껏 남아 있는 희망이다. 


옮긴이의 후기  

- 프로작의 유행이 의미하는 것은 약을 복용함으로서 정신질환의 오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셰련된 도시문화에 적응하는 서이며, 약은 옷차림이나 화장처럼 '자기 변형'의 방식일 뿐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후 온갖 삶의 조건에 대한 약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금주 보조제, 금연보조제, 식욕 억제제, 수줍음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약물, 쇼핑중독 등의 중독 행위에 작용하는 약 등등 정신과 약물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마다 등장하여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다. 

-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명이 프로작을 복용하고 있고, 이제 우리는 병적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기분변화와 실존의 고통을 약물로 해결하는 '기능개선 정신약물학'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가디언 지 , 2002>

- 기능개선 정신약물학 혹은 미용정신 약물학 이라는 용어는 소위 정상범위안에 있는 사람에게 약을 제공하여 행동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서 가벼운 증상을 약물로 치료하는 고식적 정신약물학과 구별되기도 한다. 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행되어 오던 것이나, 선택적 약물사용 문화는 이 둘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 스트레스와 삶의 예봉에 둔감해지기 위해 정신과 약물을 사용할 경우 고통의 원인이 된 일으킨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 과거 의료이념이 질병의 치료와 고통의완화에 있었다면, 현대 사회는 기능 개선과 행복을 위해 의료가 서비스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이에 소요되는 재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될 것이며 전통적 의료이면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대 의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 정신의학은 정신의학 자체의 정당성이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개인의 특성과 성격이 알약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면,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근본적 특성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과학적 정신의학이 전제하는 정신질환의 실체를 규정하기 위한 기준은 무엇인가? 소위 '정상성'인가, 아니면 '주관적 불편함'인가? 주관적 불편함일 경우, 진단분류 개혁을 통해 일반의학의 한 전문분야임을 입증하려던 그동안의 노고가 무색해 지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정신과에 대한 요구가 이처럼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적은 없었고, 동시에 지금처럼 정신과에 냉소적인 비판이 강한 적이 없었다. 작금의 '정신질환 대유행'을 단순히 정신과의 전성기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의료는 질병을 넘어서 삶의 불행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가? 어느 지점에서 '필요'가 '욕구'로 넘어가는가? 다양한 치유방식과 온갖 심리적 치료법이 난립해 있는 현실에서 정신의학은 과연 일상의 불행과 삶의 문제를 '치료'할 역할을 정당하게 부여받은 것인가?

- 정신의학이 주장하는 과학적 패러다임은 양날의 칼과 같다.
생물학적 패러다임을 고수한다면, 지금과 같이 엄청난 수의 사람이 원하는 기능개선 정신약물학을 포기하고 중증 정신질환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반대로, 유행병이라 불릴 정도의 환자 몫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정신의학은 대중의 욕구와 가치관에 영합함으로서 더욱 일용품화되고 결국은 탈의료화의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 신경과 정신과 합병에 관한 해묵은 논쟁이 요즘 다시 고개를 들고 있음은 뇌과학을 주장하는 정신의학이 기로에 서 있음을 반영하낟.

- 따라가야할 하늘 위 지표(signpost in the sky)는 아마도 다음의 질문이 아닐까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다가갈 수 없는 고통은 무엇인가? 돌봄의 방식을 정신과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posted by Dr.Hannah 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