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10. 6. 14. 19:57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 양산, 빈부 격차의 확대로 인한 사회 갈등과 삶의 질 저하를 감수하고서라도 숫자상의 성장만 이루면 된다고 여기는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서 우리의 미래가 평화로울 수 있을까?   <역자 후기>

 "우리는 보석의 값을 받고 빵을 팔고 있다" 고 개탄했던 닥터 노먼 베쑨처럼 폴 파머는 오늘날 의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거대한 값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상아탑에서 의료란 고귀한 것이라고 배웠건만 면허장을 쥐고 강호?에 나온 내게 이것은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서 나 개인의 경제적인 신분을 한계단 올려줄 수단이 되어있다.

효율이 없어 비용을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그들을 위해 고민하는 일을 몇몇 이상주의자들에게만 맡겨놓는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기심을 누르고 연대에 동참하는 것이 나에게도 가능할까..
내가 불가능 하다면 너에게는 가능할까.


쥐와 바퀴벌레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경쟁하며 살아간다.
정의와 관용의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다.                      _ 웬델베리

세계인권선언문 제 25조
모든 사람은 의,식, 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문 제 27조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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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를 갈라놓는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대중이 질문하지 못하게 하며, 심판받는 자들이 심판하지 못하게 하며, 고립된 개인들이 함께하지 못하게 하며, 영혼이 그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게 한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분열'

때로는 경제적인 빈곤이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데, 빈곤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거나,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거나, 치료 가능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옷과 집을 제대로 구할 기회를 얻거나,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을 이용할 자유를 박탈한다.
또한 방역 프로그램이나 체계적인 보건 의료 및 교육제도, 지역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 등의 공공시설 및 사회적 지원의 부족도 자유를 크게 제한한다.
한편, 억압적인 정권이 정치적 자유와 시민권상의 자유를 부정하거나, 시민들이 그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관한 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 노골적으로 자유를 침해하기도 한다. 
                                                                    - 아마티아센 '자유로서의 발전'


- 우리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약간의 의미있는 것들을 집어넣으려고 노력하고, 때로는 꽤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처럼 사망 연령의 중앙값이 5세 미만인 곳에서는 그 어떤 의미있는 것도 경험하기 쉽지 않다....략....
그런 삶에도 물론 탄생의 신비(기억하지 못한다), 약간의모유(못 먹을 수도 있다), 친족 간의 애정(대개 뿔뿔이 흩어진다), 어쩌면 약간의 교육(대부분은 받지 못한다), 약간의 놀이(전염병과 공포속에서)가 있기는 하겠지만, 곧 모든 것이 끝난다(불평을 하건 말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계속 돌아간다.

- '제1세계'의 빈곤층은 사실상 '제3세계'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가장 큰 도시에 사는 흑인의 평균수명은 훨씬 가난한 중국이나 인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도 짧다. 사는 장소만으로는 수명을 연장시킬 수 없다. 

- 예방 가능한 질병은 예방할 수 있으며, 치료 가능한 칠병은 치료할 수가 있고, 조절 가능한 질환은 조절하면 된다.
  자연이 주는 고통에 대해 불평하기 보다는 공포를 불러오는 사회적인 원인과, 증오를 용인하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 인권의 침해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그 분포와 영향력 역시 무작위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인권의 침해는 근본적으로 권력에 의한 병리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누가 고통을 받고 누가 보호를 받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가난한 아세피의 죽음..그들은 자신의 가족들로부터는 마지막까지 사랑을 받았지만, 사회 관심이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했다. ....................략........................
아세피가 짧은 생애 동안 직면한 권력의 불평등에는 관료주의(충분한 대책없이 댐을 건설해서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바람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계급(아세피와 그녀의 고용인, 그리고 오노라 대위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성별(그녀가 만났던 남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녀의 지위와 관계된다), 계층화된 사회(가난한 자들을 위한 공공시설이나 의료 지원의 부재) 등이 있었다. 
아세피는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구조적인 폭력의 희생자 였다. 

- 권력의 불균형은 소리없는 만행을 실제로 저지를 수 있다. ...........략...........
권력의 불평등은 여러 가지 기회를 제대로 나누어 갖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통제의 지렛대로부터 멀리 밀려나 있는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며, 그들의 생명까지도 다른 사람들이 내린 결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 "가난은 반대하지만 불평등은 괜찮다고 본다"라는 말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가난과 불평등을 서로 분리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에서 반박할 수가 있는데,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속박받는 사람들에게 불평등이 미치는 향을 평가하는 것도 그 중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서문

- '인권'은 사회 정의 의 흐름이나 양심적인 운동이 되기보다는 갈수록 자신들만의 통과 의례와 이력을 갖춘 일부 선택된 전문가 집단의 특화된 언어가 되고 있다. 이런 인권 운동은, 내가 목격한 몇 곳에서는, 갈수록 명예의 표지와는 동떨어진 특권의 보증서가 되어가고 있다. 

- 쿠데타의 특징 하나 ;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티처럼 군대가 해산된 지 10년이 지난 나라에서 군인들이 갑자기 숲속에서 걸어 나올 수는 없다. 그들은 재조직되고, 재훈련되고, 재무장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물론, 무언가가 조직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조직을 해야만 한다.

- 이 지역의 인권단체들은 그 자금을 대고 지원을 해주는 국제기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지역의 문제는 정의로운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인간의 문제라기보다는 프로젝트 운영비를 따낼 기회로 정의되는데, 이때문에 인권 개년은 희석되고 대중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 

- 사회 경제적 권리  ;의료, 주택, 깨끗한 물, 교육 등의 권리가 포함되기에, '가난한 자들의 권리'라 부르기도 한다. 

- 아프리카에서 인권의 실현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실상 삶과 죽음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 인권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면, 생명을 살리는 이 치료제는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자들에게만 돌아갈 것이다. 

- 불평등의 간극이 커지면 갈등도 커지게 된다.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은 폭력, 테러리즘, 전쟁이라는 돌발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현대에 들어와서 매우 심화된 불평등의 대가로 생겨난다는 사실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와 , 나아가서 얼마간의 성찰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 가난을 관리하기 위한 방폄으로 더강한 무력과 억압을 이용하는 것이 선호되고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가난, 질병, 인종차별 등에 대한 가시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아 내지 못한다면 폭력과 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머리말

벼룩이들은 자기들을 위한 개 한마리를 살 것을 꿈꾸고, 무명씨들은 가난에서 탈출할 것을 꿈꾼다. 어느 마술과 같은 날에 갑자기 행운이 머리 위로 비 오듯 내리기를...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기를. 그러나 행운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쩌면 영영 내리지 않을 것이다. 행운은 가랑비만큼도 내리지 않는다. 무명씨들이 아무리 기원을 해도, 왼쪽 손이 간지러워도, 하루를 오른발을 내딛는 것으로 시작해도, 새해에 새 빗자루를 장만해도.

무명씨들 :무명씨의 자녀들, 아무것도 쇼유하지 못한 자들, 무명씨들 :보잘것없는 자들, 보잘것없이 된 자들, 토끼처럼 뛰어다니면서, 죽어가면서, 매일매일 쥐어짜이는 자들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언가가 될지도 모르는 자들
언어가 아니라 방언을 쓰는 자들
종교가 아니라 미신을 믿는 자들
예술품이 아니라 수공예품을 만드는 자들
문화가 아니라 민속을 전승하는 자들
인간이 아니라 인간 자원들
얼굴은 없고 팔만 가진 자들
이름은 없고 번호만 가진 자들
세계사의 무대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지역신문의 사건사고란에 나타나는 자들
무명씨들, 그들을 죽이는 총알만큼의 가치도 없는 자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무명씨들">

일부이야기의 등장인물은 근래에 여러 작가들이 '작은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거만하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작은 사람들'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신 만큼이나 크다. 당신이 누구이든
                            <조셉 미첼,  "맥소리의 멋진 살롱">
 
- 주민들은 집단 학살과 강제 이주를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는데, 교사들은 이들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대했다. 주민들은 주요도시들, 우리 단체와 마찬가지로 좋은 의도를 가진 단체들, 모든 질문에 '정답'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로부터 가져온 주제에 관해서 질문을 받고 있었다.

-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는 일반적으로 정치, 사회적 삶을 '시장의 힘'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과정에 예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성인시절의 대부분을 아이티와 미국의 가난한 환자들 사이에서 살아온 의사로서, 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내 환자들에게 이롭게 작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의료, 교육 및 사회 서비스가 기본적인 인권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 싸워왔다.

-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 국가 (개혁주의적이고, 법치주의적이며, 어느 정도는 자유지상주의적인 국가)가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국가라고 주장해왔다. 자유주의 국가의 보호로 자유를 누린 비교적 소수의 집단에게는 이 주장이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집단은 모든 사람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언제나 소수로 남아있다. 

- 권력을 가진 자들은 야만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우리를 안심시키려 하지만 세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 "자유주의자란 어떤 사람들이지?" "세상의 모든 나쁜일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
인권의 침해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그 분포와 영향력 역시 무작위로 나타나지 않는다. 인권의 침해는 근본적으로 권력에 의한 병리증상으로 나타나는 겋이며, 누가 고통을 받고 누가 보호받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구조적인 폭력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다양한 공격
즉, 극단적이거나 상대적인 가난, 인종차별에서부터 성차별에 이르는 사회적 불평등, 명백한 인권 유린에 해당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
그 중 일부는 구조적인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려 한 것에 대한 처벌로 일어난다.

-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죽는 것을 투표권을 통해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략........... 사회 경제적 권리가 보호되지 않으면 시민권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 사회 경제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인권선언문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 때가 많다.

- 분명 이상적인 목표를 위한 투쟁에서도 실용주의는 나름의 역할이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인권단체들이 순수한 원칙에 기반을 둔 인권 운동만 고집하며 돈이나 음식, 의약품 등을 지원하는데 주저하다 보면, 우리가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작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돈의 테러리즘 ;갈레아노
   세계 금융계의 큰손들은 돈으로 테러를 자행하는데, 이들은 왕이나 군사령관이나, 심지어는 교황보다도 힘이 더 세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그저 벌어지는 광경에 박수만 보내다.
그들이 부리는 초국적인 전문가 집단이 우리의 나라들을 다스린다. 그들은 대통령도 총리도 아니며, 선출된 적도 없지만, 봉급수준과 공공 지출 규모, 투자와 매각, 물가, 세금, 이자율, 보조금, 태양이 언제 뜨는지, 비가 얼마나 자주 오는지를 결정한다.
   한편 감옥이나 고문실, 집단 수용소, 사형실과 같은 것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의 피할 수 없는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면책 특권을 주장하면서 "우리는 중립" 이라고 주장한다.

- 법과 헌장이 불충분하다면, 그리고 이상적인 조건에서가 아닌 한 이를 실현할 수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우선 가난과 불평등에 대처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벌이는 다른 어떤 선의의 노력보다도 중요하다.
돈의 테러리즘은 지금까지도 드러나지 않게 숨어있고, 현존하는 법규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 연구자들은 선물교환, 축일 의식, 결혼식, 세례, 노동 축제 등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안데스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장면들은 전혀 기술하지 않았다. 종기가 생겼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소녀, 출산 중 출혈로 죽어 가는 여인, 어두컴컴한 진흙 벽돌집에서 갑자기 숨을 거둔 아기를 안고 울음을 터트리는 부부 등을 말이다.

- 왜 우리가 용서를 받아야 하는가? 무엇에 대해 용서를 받는다는 것인가? 굶어죽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경멸당하고 쫓겨나야 하는 우리의 역사적인 역할을 조용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이 나라와 전 세계에 보여준 것에 대해서?                    <멕시코 사파티스파 반군 지도자들>

- 학자들은 이 반란을 민족적인 봉기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인류학자들 중에는 민족적인 자긍심에는 환호하면서, 반군들이 민족에 관계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당혹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 그들이 성명서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는가를 관찰하기 보다는 무엇을 행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 신자유주의 시대(이것이 이루가 원하는 표현이라 해도)는 실재로는 외면하는 시대, 구조적인 폭력의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해 눈을 감는 시대다. 우리가 이 시대를 무엇이라고 부르건, 인권침해를 이해하고 예방하기 원한다면 권력과 인권침해 사이의 연결 고리들을 함께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인권이 짓밟힌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면, 정치적인 권리가 사회 경제적 권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한 사회 경제적인 힘이 없이는 정치적 권리 역시 실질적으로 보장됮 않음을 알 수 가 있다.

- 깨어이쓴 양심보다 더 본능적인 것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구조적인 폭력이란, 다시 말하자면, 누가 위험에 노출되어 피해를 보고, 누가 보호받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회 경제적 불공정성을 말한다.

- 교역의 증가 자체를 두려워할 것은 아니다. 기술 발전 역시 범인이 아니다.  '세계화'를 이런 방향에서 보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1980년경부터 진행되고 있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금융환경으로의 통합 과정이 문제인데, 이 체제에서는 부가 가난한 국가에서 부유한 국가 쪽으로 흐르고, 부유한 국가 안에서도 주로 경제적 상층부로 흘러들어 간다.
   이런 흐름의 결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불평등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한 진보는 사실상 멈추어 섰다. 중심부 주변부 의존성이나 부채 노예와 같은 신식민주의의 양상이 다시 등장했는데, 가난한 이들이 처한 이 운명에 대해서 부유한 국가들은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있다                                  <제임스 갈브레이스>

- 사회 정의가 보건과 공공 의료의 중심에 놓이지 않으면 보건 분야에서 유행하고 있는 ('비용 효율성'에서부터 '지속가능성'이나 '재현성'등의) 개념들은 의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인권 시각에서 보건 경제학과 보건 정책에 접근하는 것은 효율성을 위해 형평성을 포기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할 때에만 불평등한 제도를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건강에 초점을 맞추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중요한 방향으로 인권 담론을 이끌어 갈 수가 있다. 건강권은 사회적 권리 가운데서도 가장 논쟁의 여지가 적은 권리이며, 이 분야에는 의사에서부터 지역사회 보건 활동가에 이르는 수많은 보건 의료계 종사자들이 여전히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주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부유한 국가라 하더라도 사회적 불평등이 큰 사회의 보건 지표가 비슷한 수준의 더 평등한 사회에 비해 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략............우리는 이미 세계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국경의 안쪽 뿐만 아니라 국경 너머에도 존재한는 가파른 불평등에 대해서도 형평성을 요구해야 한다. 

- 진실을 말하고 희생자들을 돕는 일이라면,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말하자. 그런 사건과 상황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우리에게는 우리가 목격한 권력의 병리 작용의 정체를 드러내고 앞으로도 계속 드러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증언

- 진실이라면, 전해져야만 할 이유를 타고났다면, 그 누구도 인간의 목소리를 막을 수 없다.
입으로 못하면 손과 눈으로, 아니면 땀구멍 혹은 그 무엇을 통해서든,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 할 말이, 무언가 축하받을 만하거나, 용서받아야 할 것이 있기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인간의 목소리를 축복하며'>

- 자기성찰을 찬미하며

대머리 수리는 스스로에게 반성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양심의 가책은 검은 표범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피라니아는 그들 행동의 정당성에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는다.
방울뱀은 주저함 없이 스스로를 증명한다.

자기 비판적인 재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메뚜기, 악어, 선모충, 말파리
본 성대로 살고, 그것에 만족한다.

범고래의 심장은 백 킬로나 나가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볍다.

깨어있는 양심보다
더 본능적인 것은 없다
태양의 세 번째 행성에서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폴라 박사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안다. 그는 잘 듣도록 교육받았다. 그를 찾아오는 중산층 환자들은 대부분 단순한 감기 증상에 대해서도 족히 10분 이상씩 설명하곤 한다. 그가 침묵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보는 곳은, 통증의 강도나 위치나 그 특성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빈민가뿐이었다. 진흙과 양철로 만들어진 오두막에서, 환자들이 아무것도 덮지 못한 채 흙바닥에 누워 있는 그곳에서, 그는 피부의 떨림이나 고통스러워하는 눈빛만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그레이엄 그림  '명예 영사'>

- 의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부상이나 고통의 정도가 통증을 호소하는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 사실, 억눌린 계층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설사 아프고 피곤하고 다쳤다 하더라도 따뜻한 대우를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략..........그들은 특권층이라면 당연히 받는 것과 같은 정중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략...... 때로는 의사가 표면의 침묵을 건드려서 고통에 찬 절규가 터져 나오게 해야 할 때도 있다.......략............
그러나 때로는 표면의 침묵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그들을 더 존중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플라 박사처럼 자신이 할 일만을 조용히 하는 것도 존중할 만하다.

- 솔직히 말해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곤경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그들을 돕는 데 특별히 더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해 연구하지 말라. 당신이 그들에 대해 말하는 것들이 모두 그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용될 것이다." (필립 부르주아)

- 나는 공공연하게 가난한 병자들의 편에 서 있으며, 나 스스로 중립적인 존재가 되고자 한적도 없다. 나는 그런 '중립'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에 서술된 구조적인 폭력을 은폐하거나 그에대한 핑계거리를 제공할 분이라고 주장한다.

- 증언을 하는 것은 타인을 대신해서 타인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비록 그들이 죽고 잊혀다 하더라도)...략....
설사 증언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이(침묵 속에서든 울부지음과 함께이든)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불의를 감내하는 고통과는 결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1장> 고통과 구조적 폭력에 대해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

- 사람들은 일인당 소득을 어디에서 벌어들이까?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굶주린 영혼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숫자가 사람보다도 더 잘 산다. 이 풍요의 시대에 몇이나 되는 사람이 풍요롭게 사는가? 개발에 의해 삶이 개발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저 작은 숫자들과 사람들'>

- 그 어떤 형태의 치료법이나 정책을 동원해도 모든 고통을 한 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고통에는 "위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 아이티 중앙 고원에서는 고통이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삶의 조건이며, 이곳에서는 매일매일의 삶이 마치 전쟁과 같다.

- 모든 지표는 소농들의 목숨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부지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우리의 풍요가 그들의 고통과 직접 관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풍요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비집고 들어올 기회는 무척 드물다.

- 내차 찾던 질서는 찾지 못했다.
대신 권력의 쥔 자들의 손에서 갈수록 자라나는 사악하고 면밀하게 의도된 무질서를 찾았을 뿐.
한편, 더 살기 좋은 세상, 굶주림이 적은 세상, 더 희망찬 세상을 위해 절규하던 사람들은 감옥에서 고문으로 죽어간다.
가까이 오지 마시라. 
내 주위에는 오물로 인한 악취가 온통 진동하니까.                   <클라리벨 알레그리아  "다리로부터">

- 제가 누더기 옷을 입고 선생님 앞에 서면
  선생님은 저의 벗은 몸을 구석구석 진찰 하십니다. 
  제가 아픈 이유를 찾으시려면 누더기를 한번 흘끗 보는 것이 더 나의 겁니다. 
  저의 몸이나 옷이나 같은 이유 때문에 닳으니까요.

  제 어깨가 아픈 것이 습기 때문이라고 그러셨지요.
  그런데 저희 집 벽에 생기는 얼룩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말씀해 주세요.
  그 습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거지요? 
                                     <베르톨트 브레히트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 어떤 족류의 고통은 관찰하기 쉬운 반면(이는 수많은 영화 소설 시의 주제가 되고 있다) 구조적인 폭력은 그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킬 때가 너무나도 많다.

- 고통이 무서운 이유는, 그 엄청난 양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권리는 고사하고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한 익명의 희생자들의 면면 때문이다. 

- 간단히 말해서, 극심한 고통은 인지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과 는 전혀 다른 일이다. 

- 우리에게는 만족스러운 이 세계가 그들에게는 철저하게  파괴적인 세계와 동일한 세계다.

- 기회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사과합니다. 내가 잘못했다면, 
  제발, 행복이여, 그대를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여겼다고 화내지 마세요.
  나의 기억이 흐려지는 것에 대해 죽은 자들이여, 이해해 주세요.
  내가 매순간 간과하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시간에 사과합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하나의 작은 별 아래서"> 

-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가난이 아주 많이 있다. 그러나 더 비참한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고 위험한 삶을 살다가 일찍 죽을 수 밖에 없도록 강제된다는 것이다. 이런 곤경은 보통 낮은 소득과 관계가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불충분한 의료와 영양 공급, 사회적인 안전장치 부족,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복지 행정의부재를 반영한다.

- 일부 인류학자들은 외부 관찰자에게는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명백한 공격으로 해석되는 것이 실제로 그 사회에서는 오랜 세월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적인 관습일 수도 있다고 주장해 왔다. ..............략....................
많은 학자들은 어떤 관행이 단지 그 문화권에서 전해 오는 가치관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묵인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 문화는 고통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변명거리를 제공할 뿐이다.

- 극단적인 고통을 당할 위험의 정도를 하나의 축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의 변수로 편리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는 엉뚱한 것을 윈인이라고 주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부와 권력이 개객인의 여성, 게이, 소수인종을 고통이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난은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등에 따늘 보호 효과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 인간의 극심한 고통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가능하며, 현재 그 고통의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이 과도하게 감내하고 있다. ...략.........."가난은 수태의 순간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의 모든 단계에서 파괴적인 영향력을  휘두른다. 가난은 가난으로 고통을 받는 모든 이들을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운 질병을 고안해 낸다."

- 우리는 가난한 다수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또 다른 거대한 장벽이 제3세계 안에 세워지고 잇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힘 있는 계층을 성가시게 하지 않고 역사의 침묵 속에서 죽어 갈 수 있다ㅗ록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장벽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칠레의 신학자 파블로 리처드>


<2장> 전염병과 억류 ; 관타나모, 에이즈 그리고 검역

- 미국의 여행 금지 조치와 대중 및 학술 매체가 일관되게 전달하는 왜곡된 묘사로 말미암아, 북미의 대다수 사람들은 이 가난한 제3세계 국가가 경제위기를 겪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강력한 국가의 수도인 워싱턴보다 높은 보건 의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비바 촘스키 "좋은 사례라는 위협 ; 쿠바의 보건과 혁명">

- 어쨌든 나도 언젠가는 죽게 될 거야. 그래도 이런 식으로는 안돼.  <아이티 난민 욜랑드 장>

- 아이티인과 HIV에 관련해서 미국이 보인 반응의 바탕에는 아이티인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고, 더 중요하게는 다른 사람들에게'감염시킨다'는 완고한 인식이 깔려 있다.

- 클린턴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관타나모의 사건은 혐오스러운 일이자 범죄가 아니라, '비용 효율성'의 문제였던 것이다.
- 굶주리는 이웃의 정치 체계가 낙후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조를 미국이 제공하기를 거부한 사례가 또 있었는가?           <마이애미 해럴드 사설>

- 정의 없이는 화해도, 민주주의도 없다.   <인권변호사 브라이언 컨캐넌>


<3장> 치아파스의 교훈
- 치아파스는 가난하지 않다. 그러나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다.

-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경제 분석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득과 상품으로부터 돌려서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는 것들로 옮겨 놓아야만 한다. 소득과 상품은 원하는 다른 것을 얻기 위한 도구라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다른 것을 할 수 잇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소득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가 소득을 필요로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로 좋은 삶, 즉 우리가 소중히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티아센, 1995년 유엔아동기금의 이노센티 강연에서>

- 지금 그들이 원하는 평화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전쟁이었다. 토지아 상업, 제조업, 그리고 금융업의 훌륭한 주인들께서는 인디오들이 도시에 굴러 들어와서 죽음으로써 여태까지는 수입 상품을 쌌던 포장 쓰레기로만 어지럽혀졌던 거리를 더럽힐 것이라는 사실에 심기가 불편하시다. 그들은 인디오들이 선량한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의 눈에 띄지 말고,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산골짜기에서 조용히 죽어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다. 소수의 부자가 다수의 가난 위에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들도 좋든 싫든 우리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이 나라가 그 원주민들에게 가해 온 커다란 역사적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마음의 눈을 뜨고 무엇이든 할 기회를 가졌었지만, 인디오들을 인류학적인 연구 대상이나, 관광객들의 호기심의 대상, 쥬라기 공원의 한 부분 이상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원주민들은 이제 이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NAFTA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산속에 사는 사람들의 죽음은 그들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은 한 해 한해 계속해서 착취나 마찬가지인 계약을 맺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간혹 일부 비평가들이 이런 노예와 같은 상황을 비난했다. 라디노들은 이를 즉각 부정한다. 그들이 맞다. (헌법에 금지되어 있는)노예제도는 없다. 그 대신 매년 재계약되는 부채 노예제도가 있을 뿐이다. 

- 우리는 자원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객관적인 수치는 그 반대의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전례없이 큰 번영을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만일 치아파스가 세상에 들려줄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자원이 좀 더 고르게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4장> 집집마다 전염병이? ; 러시아의 교도소에 재창궐하는 결핵

- 누가 감옥에 가게 될 가능성이 큰지, 감옥에서는 누가 감염되는지, 그리고 누가 치료를 늦게 받거나 부적절한 치료를 받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중심에 구조적인 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 줄 것이다.

- 결핵을 징벌로써 걸리게 하는것과 마찬가지인 현재의 상황을 멈출 유일한 방법은 모든 수감자에게 신속하고 효율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

- "건강의 동반자"가 아이티나 페루에서 벌인 활동은 아주 가난한 지역에서도 다제내성 결핵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치료 약물이 비용 효율적이기에는 지나치게 비싸다는, 늘 반복되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특허 기간도 만료된 이 약들이 왜 그렇게 비싼지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런식으로 비용 효율성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불평등을 관리하는 (그리고 영속시키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되고 있다.
- 일자리 보장이 사라지자, 경범죄가 증가했다. 가난한 사람을 감금하는 것은 책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방편 중의 하나로, 사회학자인 로이 와캉은 이를 '경찰과 교도소를 이용한 빈곤의 관리'라고 불렀다.

- 부패와 민주화의 불행한 조합은 사회 경제적 권리를 극심하게 침해하는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사회 경제적 권리를 중시하던 소비에트 시절의 전통은 사회적 재난에 의해 괴멸되어 버렸다.

-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집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물을 아끼기 시작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겠다.

- 잘못된 비용 효율성 개념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결핵 치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제내성 결핵이 멀리 떨어져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병은 전염병이고,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 일부 환자들만 치료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경비가 더 적게 드는 것처럼 보이잠 장기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재앙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인권에 대한 한 의사의 생각

   - 인권에 대한 논의는 생존권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의 권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혼 소브리노, '해방의 영성'>

- 해방신학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의 고통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 따라서 다른 대부분의 사회 분석들과는 달리, 해방신학의 주된 관심은 가난한 자ㅡㄹ에 대한 섬김이라는 주제로 연결되낟.

- 의사들도 누가 왜 아프게 되는지, 누가 어떻게 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이론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과 그것에 바탕을 둔 여러 전망들은 의료인들이 현재 빠져 있는 긍지, 즉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의료를 제공하기보다는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제공해 줄 것이다.

- '시장의 힘'이 현대 의학을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한다면 이 반갑지 않은 흐름은 의료를 행하는 것 자체가 곧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5장> 건강, 치유, 그리고 사회정의 ;해방신학의 가르침

- 고속도로나 샛길, 공장 지대나 빈민촌, 농장이나 탄광에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내 이웃이라고 정의한다면 내가 속하는 세계가 바뀔 것이다. 이것이 '가난한 자들을 고려하는 선택'이 가져오는 변화다. 성경에 가난한 자들이 우리의 이웃이라 되어 있으므로....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와 무관하게 생겨난 것이 아니며,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체계의 산물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만든 사회와 문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프로레타리아이며, 노동의 대가를 빼앗기고 인격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은 자비로운 구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우리더러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라고 하는 요구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역사 속의 가난한 자들의 힘'>

-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 더 잘 맞는 구조적인 분석은 일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소리내어 말하고, 그 새로운 틀 안에서 인권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도록 이끌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 대안적인 언어는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평등을 누리고 있다고 전제하는 방임적인 자유주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제시한다. 이 새로운 원칙은 또한 인권을 지키는 데 있어서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인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데, 그 중요한 문제란 바로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곤궁과 박탈, 라틴 아메리카의 삶과 사회의 갈등 양상,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보호해야 할 성서상의 근거 등을 말한다.                          <구티에레스>

- 악이라는 것이 권력을 쥐고 횡포를 부리는 개인들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자체에도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세계를 바꾸려면 그 체제를 움직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포함한다.

- 20세기 말의 인류가 처한 상황의 면면에는 억압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요소가 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을 비롯해 여러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억압을 받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렇게 잘 드러나 있는 문제를 앞에 두고도 그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국제기구들의 무능함의 근저에는 타인을 억압해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의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각각의 문제에는 도덕적 불감증과 정치력의 부재와 대처 능력의 부족이 중첩되어 있다. 
만약 문제의 본질이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라면,  그 갈등을 해결할 에너지는 억압받는 자들 자신으로부터 나와야만 한다. 

-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이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으면서 왜 지금 시작하기로 결정했는지 묻는다.
이전에도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최근 10년간 15만 명 이상의 우리 형제 자매가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 갔다.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 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에는 우리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전혀 없고 선거철에 적선하듯이 내어 주는 대책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빵부스러기 같은 선심은 우리의 문제를 아주 잠시 완화시킬 뿐, 곧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위에 다시 드리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의미 없이 죽을 수는 없다, 차라리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우리의 선조들처럼 위엄있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사파티스타>

-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동료 인간들의 기도와 염려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한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도움이 없는 마음만의 연대는 무척 공허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 상품화된 의료는 건강을 좋은 제품가 서비스를 구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 자신들의 '선함'을 계속 드러내려면 억압자들은  불의를 영속시켜야 한다. 불의한 사회질서는 이런 '선함'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며, 그런 질서는 죽음과 절망과 가난에 의해 유지된다. 참된 선함은 이렇게 잘못된 자선을 필요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프레이리>

- 자선이 다시 증가하는 것은 평등이 후퇴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하는데 우리 사회가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상이자 그 원인이다. 그것은 빈곤을 (최소한 일부라도) 제거하겠다는 희망을 버림으로써 나타나는 증상이며, '위대한 사회'에서 표방되었던 목표뿐만 아니라 그 방법으로부터도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고, 문제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즉, 예방보다는 피해 복구로) 돌아섰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자선의증가는 우리 사회가 가난에 대한 싸움에 실패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자넷 포펜딕 '친절의 증가와 정의의 감소 사이의 관계 '> 


<6장> 선지자들의 경고 ;시장 중심 의료에 대한 비판

-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마다 벌어지는 '결과의 차이'때문에 의학이 발달할수록 건강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방금 당신과 이야기하던 의사 말입니다. 그는 장사꾼인가요? 보수를 받아먹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병자들을 치료하는 사람인가요?    <플라톤의 공화국>

- 세계화된 시장경제는 모든 배들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부의 증가는 대신에 과잉과 천박함을 더 견고하게 자리 잡게 만들었다.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흉작이나 분쟁 소식을 접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싼 사치품을 판다는 소식도 듣는다. 

- 자유 시장은 서비스와 치료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심이 없다. 
돈을 낼 수 없는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거절한 사례는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책임을 환자 혼자서 고스란히 지게 되어 있는 자유 시장 체계만큼 치료의 거부가 정당하다고 인정 받은 적은 없었다........략...... 이 관점에서 보면 불평등은 불행한 것이지 불의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일부 계층은 자연과 사회의 로또에서 실패한 자들일 뿐이다. 사장 윤리의 본질이 이타주의를 배재하지는 않지만, 서로 도와야 한다는 윤리적인 의무를 부과하지도 않는다.                                             <펠레그리노>

- 자유 시장에는 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보험에 들지 못한 사람들, 보험에 들 수 없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다.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 장애인, 병자, 노인, 정서장애 환자라는 사실이 이제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들은 더 높은 보험금, 더 많은 수수료를 내야 하거나, 보험 가입을 거절당한다.  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상담하고 격려하고 교육하는 데 추가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이제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일들을 하려면 이들이 지불하는 요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 누가 새로운 약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우리가 시장의 힘에 양도했기 때문에, 도움을 가장 필요로하는 사람들은 질병의 창궐에 대처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불평등은 의사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불평등과 양질의 의료를 양립시키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에이즈와 결핵 치료제를 제공하고자 하는 연방 정부의 임시방편적인 대책조차도 정치권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곤 하는데, 그 정치인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은 그런 제도를 필요로 할 날이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 우리 모두가 특히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현대 기술의 결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보건 의료의 '개혁'이 진행될 수록 기술은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자들에게만 제공되게끔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교차로 앞에 서 있다. 의료를 사고파는 상품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기본적인 권리로 생각할 수도 있다. 동시에 두가지 모두에 해당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무리다.

- 의료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의사나 의료기관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인가? 본질적으로 따졌을 때, 환자들과 그들이 겪는 고통이 의사와, 병원과, 그 투자자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의사와 그들이 종사하는 의약 산업 전체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리처드 건더먼  '의료와 부의 추구'>

- 오늘날은 참으로 위험한 시가다. '비용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할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데, 이들은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아플 가능성이 더 큰 사람들이다.

우리는 치유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소리만을 좇아서 보건의 안전망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편익을 핑계로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 비용 효율성은 전체적인 보건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에는 적절하지만, 보건상의 두 번째 목표인 불평등을 줄이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평균보다 나쁜 건강 상태에 있는 인구 집단에서는 보건 사업의 효과가 덜 나타날 수 도 있고, 이들에게 접근해서 치료하는 데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
   따라서 분배를 염두에 두고자 한다면, 이 척도를 위해서 전체적인 보건의 향상을 약간 희생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세계 보건 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아픈 사람들은 언제나 이러저러한 성향의 치료자들의 도움을 받아왔다. 인간의역사에는 훌륭한 치료자도 있었고, 돌팔이도 있었다. 그런데 의학이 지금처럼 과학과 기술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20세기의 발전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21세기의 선택을 해야 하낟.

치료자들은 의료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만들고자 하는 싸움에서 어느편에 설 것인가? 가난한  병자들의 고통은  이 날카로운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지고 있다.


<7장> 잔인하고 유례에는 형벌 ;약제내성 결핵

- 징벌에 포함되어서는 안 될 질병과 죽음이 감금 때문에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또한 이런 상황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현상황이 발생시킬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 교도소는 미국내의 가난한 이들을 보이지 않게 숨기는 다른 모든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전도가 유망한 산업이다.
                               <로이 와캉  '빈자의 감옥'>

-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선의가 필요하며, 또한 재원이 필요하다.

- 무엇보다도, 우리는 포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가장 큰 문제는 체념이라는 결론에 도달 했다.
바로 이런 체념 때문에 출판물이나 보건 운동 단체의 주장에서 교도소의 약제내성 결핵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청사진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대신에 다제내성 결핵을 제대로 치료하자는 요구는 '이상주의적'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그림의 떡'이거나, '비용효율적이지 못하다'고 기각되어 버리곤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인 결핵 치료가 '이상주의적'이든 아니든, 이 방법 이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 갈 수록 명백해 지고 있다.

- 세계 보건 기구의 정관은 "국가간에 건강 증진 및 질병, 특히 전염병 통제 수준의 불균등한 발전은 모두에게 위협이 된다." 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이중 기주을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전할 좋은 소식 하나는, 전염성 질환이 통제되지 않는 한, 정말로 안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부유한 사람들도 깨달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8장> 새로운 과제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 권리와 의료윤리

- 이 시대의 가난한 환자들 앞에 놓인 비극과 맞서지 못하는 윤리는 부도덕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 1년동안 약 6백만 명이 결핵, 말라리아, 에이즈로 죽을 것이 예상되는데, 치료 가능한 이 세 가지 질병은 거의 전적으로 현대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어 간다. 이 죽음은 구조적인 폭력을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권사회의 중심의제가 되어야만 한다.

- 제가 윤리를 거스를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저는 그분의 바지가 좌우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퍼뜨렸다고 해서 죄인으로 몰릴 생각만 해도 두려운 걸요. 그래서 모든 책임으로부터 빠져나갈 대비책을 벌써 준비해 두었지요..........이제 윤리에 대한 반란죄로 우리 모두가 경찰에 에워 싸여도 죄인을 찾아내기가, 전적으로 책임질 자를 찾아내기가 아주 어려울 겁니다.                                     <존 카푸토  '윤리에 반하여'>

- 제 3세계에서의 연구는 지원금도 더 많고, 점점 더 엄격해지는 국내 규제를 피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이다. 외국에서도 최서한 국내에서만큼 피실험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그 조항들은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실험이 그것을 추진하는 나라에서는 승인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제 3세계에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임상실험은 아주 큰 사업이 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성공을 ㅟ해서는 장애물을 최소화 하고 가능한 빨리 연구를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마르시아 안젤>

- 부유한 나라에서 개발된 윤리 규정은 부유한 대학이 가난한 나라에서 연구를 수행하려고 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 따라서 가난한 지역에 '적합한'(즉, 덜 엄격한) 규정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뒤따른다. 이렇게 수정된 규정은 '현명하다'거나 '합리적'이거나 '현실적' 이라는 평을 듣는다.

-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주요 동기 가운데 하나가 자율성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자율성은 윤리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전문 영역에 도덕적 의무를 부과한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재 '전문가'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집단들을 떠올려 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우선 착수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그 회원들이 준수할 윤리 규정을 만들어 공표하는 일이다.     <솔과 배스포드>

- 치료를 받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이라면, 그런 권리를 가지는 인간은 누구인가?

- 환자들이 직면하는 난제들을 다루는 학문인 의료윤리가 누가, 왜 아프게 되는지, 그리고 누가, 어떻게 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해 보다 넓은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까?

- 나는 가난한 병자들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가장 준엄하고 충성스러운 비판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충성스러운가 하면,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병원이나 진료소를 계속 찾아오기 때문이다.

듣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들이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 그 어떤 전문가 집단도 의료인들만큼 병에 걸려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더 가깝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런 큰 특권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의료인과 병에 걸려 고통바든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업상의 계약이 아니다.

- 의학이 '천직'이라는 예우를 받으려거든 윤리 강령을 만든 전문직 스스로 가난한 병자들에 대한 치료자로서의 특별한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 모든 사람이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궤변에 우리는 얼마나 저항해 보았는가?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윤리 논쟁의 일각에 숨겨진 전제는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엄청난 부를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 "의사 및 의료인들은 환자와 주민들의 입장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남용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 "  <타비스톡 선언의 초안>

이 초안을 쓴 사란들을 부유한 국가의 의사들이 사회보장제도를 남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권고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아이티나 우간다, 러시아, 할렘가가 우리와 같은 세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난과 질병이 만연한 이들 지역에서 임상 실험을 실시하는 것 역시 '제도를 남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문제의 그 제도란 우리 눈앞에 점차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전 지구적인 관계망을 의미한다.
   실험의 내용은 대부분 그 연구비를 대는 나라 안에서는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들이다. 연구소 심사위원회가 그 실험은 승인한 것은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는 것이 실험대상자들이 살고 죽는 가난한 사회의 지역 치료 기준이기 때문이다.

- 인권이라는 개념이 때로는 만병통치약처럼 남용되기도 하지만, 인권을 본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인권관련 주요 문건들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인권침해를 당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할 때에만 드러날 것이다.

- 세계 인권 선언문의 정당한 수혜자는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이다. 개인주의와 풍요와 상대주의가 만연한 우리 시대에 이 말이 아무리 불편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질병이라는 고통의 대부분을 감내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다시 한번 다수의 인류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모든 사람"이라는 말이 진정으로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기회 앞에 서 있다.


<9장> 보건과 인권 다시 세우기 ;방향의 전환을 위하여

- 세계 시장 경제가 전통 사회들과 그 도덕 체계를 해체하고, 세계를 구석구석까지 단일한 경제트로 끌어들임에 따라서, 인권은 세계의 신중산층이 새로운 세계 질서 안에서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우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세속적인 교리로 떠올랐다.                 <케네스 앤더슨 '인권감시' 전 회원>

- 만약 이것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 세계화 시대에 들어선 이후, 공중보건은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형평성 면에서 후퇴를 거듭해 왔는데, 공교롭게도 빈곤 계층은 세계화의 결과로 이런 차별화된 치료에 반발할 만큼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게 되었따.

- 건강 문제 이외에도 우리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병세는 호전되었지만 집세를 마련해야 한다. 일거리를 찾기도 어렵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 우리는 자식을 키울 방도를 찾지 못하는비참한 현실과 매일 마주하고 있다. 아이티의 모든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비극이 다른 나라에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생각하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모든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 아닌가?
...............................략....................................
이미 감염이 되어 있는 우리도 예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잇다. 그러나 예방만으로는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 병에 걸리면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함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병원도 의사도 간호사도 치료도, 아무것도 없다. 
...............................략.............................................
건강권은 곧 생존권이다. 누구에게나 살 권리가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런 비참한 정도가 아니라 견딜만한 가난 속에 살고 있었더라면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곤경에 처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HIV에 감염된 아이티인들이 발표한 성명서>

- 인권담론이 때로는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서 구스타보 그티에레스가 지적하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별도의 언어'가 필요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권에 관한 '자유주의적 이론'에서 "우리 사회가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평등을 누리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다.

- 고문을 금지하는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 규법을 부정하는 국가는 없으며, 실제로 국내법과 국제 사법 체계 안에서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제 엠네스티의 보고서에 나타나는 것처럼, 대다수의 국가들이 고문을 체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세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우리는 현존하는 국제법으로 고문을 실질적으로 금지할 방법이 없다고 결론 내려야하지 않을까?   <로절린 히긴스>

- 국가 내부의 혹은 국가 간의 불평등은 의학과 과학 진보의 열매가 어떤 이들에게는 넘쳐 나고 다른 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평등의 규모는 엄청나며, 그 추세 역시 좋지 않다. 

- 불평등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이제는 알려져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부는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반면, 나머지 국가들은 대부분 그런 불평등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 권력과 긴밀하게 연결된 "인권사회"의 성명이나 활동에는 겸손한 자세가 부족하고, 위선이 너무나 많이 베어난다.

  서구가 타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이전보다 현저하게 자주, 그리고 더 변덕스럽게 개입함에 따라서 서구 사회가 제시하는 권리기준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권은 갈수록 지난날 거만했던 식민지 시대의 무자비하고 기만적인 태도와 똑같은 도덕적 제국주의를 나타내는 언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략........................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들이 한쪽으로는 인도네시아나 터키가 자국의 반정부 민간인들을 억압하는데 사용하는 무기와 수송 장비들을 제공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그 나라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치관이 이익추구를 실질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영욱 노동당 정부가 스스로 내건 목표인 '윤리적인 대외정책'은 모순에 빠질 것이다.                                     <정치와 맹목적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인권>

- 심각한 가난을 앞에 두고 스슷로를 실용주의자라 하면서 윤리 기준을 완화시키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더욱 준엄한 질책으로 해방신학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더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음에 목표를 낮추어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버렸다. 그보다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더 효과적인 개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느느 가장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를 총알받이로 이요하고 우리의 부를 약탈해 갈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리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머리 위의 지붕도, 한 조각의 땅도, 일자리도, 의료도, 식량도, 교육도 없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우리는 민주적으로 자유롭게 우리의 정치적 대표자를 뽑을 수도 없고, 외세로부터 독립할 수도 없고,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위한 평화와 정의를 누릴 수도 없다. 
                                                                     <사파티스타 반군 지도자들의 성명서>

- 멕시코 정부의 보건 및 여타 서비스는 좋게 표현하자면 정부의 대게릴라 작전보다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나쁘게 말하면 이런 서비스는 그  자체가 억압의 한 방편으로서, 지지자들에게는 포상이 되는 반면에 반대자들에게는 징벌을 가하면서 사기를 저하시키는 데 이용된다. 어느쪽이 되었든, 자치 지구에 제공되는 정부의 본건 의료 시책은 차별적이고, 정치적인 분열을 조장하며, 그 지역 주민이 실질적인 의료 수요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권을 위한 의사회>

- 우리의 사명, 우리의 충성은 일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사명이 얼마나 독특한 것인지를 알아보려면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서 유엔과 관련된 국제기구들이 그 본질상 정부들과 일하게끔 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 연대 의식에 물질적인 차원이 지원이 보태진 실질적인 연대는 이 사회의 벼랑 끝에 살고 또 죽어가는 사람들과 지역사회들의 요청에 부응한다. 생각을 넘어서서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 더 큰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주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이상과 철저한 분석을 연결시키는 일은 가능한 일이다.

-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인권 운동을 더 큰 파이 조각을 얻기 위한 씁쓸한 경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결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분석의 대상에서 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예를 들어서 다국적 기업에서 성별에 따른 유리천정을 깨는 것)과 기본적인 의료 등의 필수 재화를 얻기 위한 투쟁은 구분을 해야한다. 특히, 마지못해 극소수의 여성과 소수지단 출신에게 임원 자리를 내어 준 바로 그 기업들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더  크게 벌려놓고 있다면 말이다. 
    과거에 자신의 권익을 제데로 주장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 오히려 불평등을 더욱 조장하면서 권력과 부에 접근하고자 맹렬하게 도전하는 것을 사회정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 권리의 개념을 가능한 모든 것을 포괄할 정도로 확장시키다 보면 큰 위해를 끼치는 부당한 사건들이 사소한 불평의 홍수 속에 묻혀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 주의깊은 분석을 해야만 그들의 주장에 확신을 가지고 반박할 수 있다.  우리는 인권 침해를 '연구만'해서도 안되지만, 연구하기를 그쳐서도 안 된다. 

- 루돌프 피르호는 의사들을 '가난한 사람들의 타고난 대변인' 이라고 했다.
 '보건의 시각'은 독특한 접근법을 통해 인권 담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 서비스의 제공을 새로운 의제로 둔다.

- 인권침해에 대응하고자 더 많은 인권 관련법을 제정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는데, 그 이유는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이미 구속력이 없다는 것으로 드러난 그 법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략...................
아이티인들이 말하듯이 "법은 종이로 만들어졌고, 무기는 쇠로 만들어졌다". 법만으로는 이런 극심한 고통을 덜어 줄 수가 없다. 

- 고통받는 사람들은 나보다도 훨씬 더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데,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연구 센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새로 연구하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해온 전총적인 시도들(저널, 책, 논문, 코스, 회의, 연구)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 생명의학의 치료 기법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널리 전달하는 능력은 오히려 그 이상 줄었다.

-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 15년 간 일해 본 결과, 우리 단체는 어떤 조건에서나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고자 계속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 최근 제 3세계에서 행해지는 에이즈 연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질이 낮은 의료를 공식적인 정책 표준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회 경제적 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기준이 인권침해로 널리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보건과 인권 부문에서는 효율성이 정의를 누를 수 없다. 

- 아이티 과테말라 르완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가 부유한 세계에 사는 우리의 안락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는 역사를 삭제해 버리고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권력의 병리 작용에 대해서 눈을 감은 채로 있어야 한다. 그런 허구를 영속시키기 위해서는 (순진함 때문이든, 무책임함 때문이든, 공모에 의한 것이든) 구조적인 폭력의 기원과 그 결과를 은폐하는 정직하지 못하고 탈사회화된 분석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지금까지 주장한 것은 이제 건강권을 다른 인권만큼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것은 실질적인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즉 갈수록 가혹해지는 '새로운 세계 질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후기 
    ; 불평등이 관리되는 시대의 인권

- 개발에 대한 평가는 부유한 자들이 더 부유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빈곤의 감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질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전망없이는 미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아마티아 센>

-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언어나 성별이나 정치적 성향도 아니고, 종교나 인종이나 부족도 아니다. 그들이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굴복하기를 거부했던 자들이라는 것이다. 권력의 병리 현상은 관련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데 죽는 것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런 범죄는 구조적인 폭력의 증상과 징후다. 우리의 안락을 위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조금이라도 용납한다면, 이는 우리 자신의 안락을 위해 이 범죄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는 20세기 마지막 20년간 가난이 심화되는 과정을 겪었고, 그 결과로 폭력의 온상이 되었다. 이 지역 18개국 가운데 13개국의 노동자들을 1998년에 1980년보다도 적은 최저임금을 받았다. 그럼에도 소비의 기대 수준은 내려가지 않았고, 도시 지역에서는 오히려 미국의 수준에 필적할 만큼 올라 갔다. ...... 그렇게 된 문화적인 과정은 모든 국가에서 대동소이 했다. 광고가 사회 깊숙이까지 파고들었고,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기호를 갈수록 획일적으로 만들었고,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하나의 생활 양식이 되었따아. 첼레비전은 도처에, 심지어 도시의 가장 가난한 가정에도 보급되었으며, 이는 소비문화를 엄청나게 확산시켰다. 그 결과 원래 부족했던 소득 위에 도시 지역의 안락한 삶을 상징하는 제품들에 대한 욕구와 패션 브랜드를 통한 외적인 구별짓기의 욕망이 더해졌다. (브리세뇨 레온과 주빌라가 2002)

'성장을 통한 과정'과는 달리 '부양을 통한 발전'은 높은 경제성장을 통해서 작요하지 않는다. 이는 스리랑카, 개혁 이전의 중국, 코스타리카 인도의 케랄라 주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큰 경제 성장 없이도 사망률을 매우 빠르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일인당 실질소득의현격한 증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며, 사망률은 낮추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회복지사업(특히 보건과 기본 교육)에 우선 순위를 둠으로써 이루어 진다. (Sen 1998)

'아래'를 향한 연구만큼이나 '위'를 향한 연구도 역방향의 '상식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지를 묻는 대신에, 왜 다른 사람들은 그토록 부유한지 물을 수 잇을 것이다. 사회과학자가 미국의 부유층과 중산층이 축적되는 양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저토록 완고하게 변화에 저항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류학자들은 왜 영세 농민들은 변화하지 않는지를 묻는 대신에 자동차 산업은 왜 혁신하지 않는지, 왜 국방부와 대학은 더 창의적인 조직이 되지 못하는지를 묻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성해샤 할 것이다. 주요 기관과 관료적인 기구들의 보수적인 경향은 아마도 영세농미들의 보수적인 경향보다도 인류와 변화에 관한 이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Nader 1972)

쿠바가 미국에 골칫거리인 이유는 항상 같았다. 자신들이 잘 살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ㅇ르 쿠바가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카스트로의 사상'을 통해서 계속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쿠바는 현재의 심각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더 높은 비율로 의사들을 해외에 파견하고,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 정도의 보건 의료 제도를 상상 밖으로 유지 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과 미국의 역사에서 뿌리가 깊은 광신적인 경향 때문에 현재의 미국 정부는 신경질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헛되이 계속할 것이다. (Chomsky 2000)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빵한조각이 생명이며
그것을 빼앗는 것은 살인이다
이웃의 살길을 막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이며
일꾼에게서 임금을 갈취하는 것은 그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집회서 34장 18-22절)

우리는 동냥이나 자비가 아니라 정의를 원합니다. 고정한 임금, 약간의 좋은 땅, 깨끗한 집, 정직한 학교, 효험이 있는 의약품, 식탁에 올릴 빵, 우리의 것을 존중받는 것ㅇ,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우리가 하는 말이 죽음이라는 희생 없이도 평화롭게 다른 이들의 말과 통할 것을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계속 요구했던 것인데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그런 이후에야 우리는 손에 무기를 들었고, 우리의 농기구를 투쟁의 도구로 바꾸었습니다. 
  ........략..............
이전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죽음이자 멸시였고, 아픔이자 고통이었고, 치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전과 같은 평화는 더는 원하지 않습니다.       (사파티스타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1994)

브라질 북동부 지역의 빈민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장기이식은 젊고, 가난하고, 아름다운 몸으로부터 늙고, 부유하고, 추한 몸으로, 그리고 남반구의 가난한 국가로부터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의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불평등이 압도하는 세계에서는 장기도 여러 상품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린다.   (생명을 훔치다:세계화와 장기 절취에 대한 소문)

필요에 의해 개발되는 약은 거의 없다....가난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의 치료제의 연구개발 문제는 시장원리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관리 의료의 지지자들에게는 의료가 자동차 조립이나 컴퓨터 칩을 제조하는 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이 모델은 1차 의료와 예방에 중점을 두며 관리 의료의 사고 방식에 의하면 HMO는 중한 질병에 대해서는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필요없이 (즉, 진짜 아픈 사람을 치료하지 않고서도) 높은 이윤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 .         (Anders 1996)

임상 실험은 입증된 최고의 치료가 보장되는 가운데 행해져야 한다. ...가난한 나라에 별도의 윤리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경제적인 요인이지, 윤리나 과학에 바탕을 둔 결정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임상실험은 허가되어서는 안된다. (Greco 2000)

빈약한 인프라 때문에 가난한 국가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뻔한 주장을 비난하면서 응구옌은 "빈약한 시설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예산 삭감으로 중환자실이 폐쇄도었다고 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심폐 소생술으 행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응수했다.  

차관을 받는다면 결국 나라을 빚의 구렁텅이에 더 깊이 빠뜨리게 도리 것이다. 우리가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구하고자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인데, 차관은 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나미비아의 종신 보건부 장관인 칼룸비 샹굴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제약회사들은 개발도상국이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등의 복제약을 생산하는 것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 회사들은 경쟁에 내몰리면 자신들이 투자한 연구개발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익과 지출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부분의 미국 제약회사들이 마케팅 광고 관리비에 연구개발비보다도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Pollack and O'Rourke 2001)

최근에 신약의 연구개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약값을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따. 1989년부터 2000년까지 12년동안 미국FDA가 승인한 1035종의 신약을 본석해 본 결과, 그중 단 15퍼선트만이 혁신적인 - 새로운 활성 물질을 포함하면서 임상효과가 월등하게 개선되- 신약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가된 나머지 약들은 기존의 약을 조금 개선한 것에 불과했고, 이 경우에는 연구개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므로 투자 대비 수익률이 더 높았다.
(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Care Management 2002)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 본부를 둔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오늘날 세계의 최하계층 10억명이 주로 걸리고 대부분의 때이른 죽음을 초래하는 전염성 질환은 무시한 채, 비교적 잘 사는 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질병들에 대한 의약품의 연구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Pharmaceutical Research and Manufactures of America 2002)

내가 생각하는 의료를 정의하자면, 일반적으로,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질병의 경과를 완화시키며, 그리고 병세가 이미 깊어져서 의학의 힘이 미치지 않는 자들에게는 치료를 중지하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posted by Dr.Hannah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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